나는 경력 5년차 사회복지사다. 애초 사회복지사를 꿈꾸었던 이유는 지구를 지키고 세상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말 사회복지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50만 명이나 되는 사회복지사들이 한 곳에 뭉쳐서 외친다면 어떤 것이 불가능하겠는가.
하지만 현재로선 세상을 바꾸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50만 명 모두가 진짜 사회복지사가 아닐뿐더러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들도 일터 바깥 세상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사회복지사들이 혼자만의 가슴 속 울림으로 간직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경험적으로 드러난 실체가 없으니 관심이 없는 것으로 결론지어도 무방할 듯하다.
자기 일터에 충실한 사회복지사를 비판하고자 함은 아니다. 사회복지사가 여전히 어려운 근무환경 속에서도 많은 변화와 가능성들을 만들어 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사회복지사가 자신이 속한 현장에 충실함으로써 만들어 내는 가치들이 소중한 것임은 사실이므로, 그들은 여전히 사회 속에서 필요한 존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사회복지사, 자신의 직업윤리를 성찰할 때
사회복지사들이 자신의 업무에 충실함에도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자신이 지지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삶 역시 변화되지 않는 현실이 아프다. 이러한 경험을 자신의 한계, 혹은 이 사회의 한계로 치부해버리고 동일한 업무와 태도로 현상유지적 활동에 안주하고 있다면 사회복지사 스스로 자기 직업윤리 의식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에는 실재하는 직업윤리가 존재한다. 사회복지사윤리강령의 전문을 보자.
“사회복지사는 인본주의, 평등주의 사상에 기초하여,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하고 천부의 자유권과 생존권의 보장활동에 헌신한다. 특히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사회정의와 평등,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앞장선다. 또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저들과 함께 일하며, 사회제도 개선과 관련된 제반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이 윤리강령의 전문은 사회복지사라는 직업군에 포함되면서부터 사회복지사는 사회정의와 평등,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고 사회제도 개선을 위한 주도적 세력임을 밝히고 있다. 이것이 한국사회복지사들이 지켜 나가야 할 하나의 윤리이다.
사회복지사 각자는 일터에서 경험하는 한계, 개인의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사회구조에 의해 움직이는 거대한 강제에 대해 저항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가진다. 하지만지금 한국의 사회복지사는 권력이 이행하고자 하는 제도에 어떠한 저항 없이 순응하며 보통의 시민들에게는 착한 사회복지사의 이미지, 비판론자들에게는 복지 하청업자라는 오명만을 써오고 있지 않은가.
왜 장애인들은 스스로 이동권 쟁취를 위해 나서야 했을까?
사회복지사의 역할에 대한 성찰을 위해선 지난 10년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조직을 주목해야 한다. 장애당사자 조직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다. 2001년 지하철 오이도역에서 리프트 추락사고로 장애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 문제의 해결과 장애당사자의 이동권 쟁취를 위해 장애인이동권연대가 출범했다.
장애인이동권연대로 시작된 이 운동은 그들의 구호처럼 차별에 저항하면서 많은 것을 쟁취했다. 도로, 철로 등 대중교통시설을 점거하기도 하고, 심지어 한강다리를 맨몸으로 기어서 건너기도 하면서 그들은 운동시작 4년 만에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입법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이후 특수교육법 개정, 장애인차별금지법 입법화,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제도 도입, 청계천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확대, 지하철역사 엘리베이터 설치 확대 등 장애당사자가 절실히 필요로 했던 많은 사회적 권리들을 얻어냈다. 이들의 노력으로 인해 장애당사자의 삶은 변화했고, 대한민국의 당당한 시민으로서 일어서고 있으며, 이 운동은 여전히 많은 도움이 필요한 장애당사자의 권리를 위해 나아가고 있다. 폭력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그들의 요구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그때를 생각한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장애당사자 스스로에게만 부여된 사명이었을까? 사회복지사 윤리강령이 설명하는 혹은 현장에서 경험적으로 부딪히는 사건들로 볼 때, 이는 분명히 사회복지사들의 역할이기도 하다. 오히려 그들의 운동이 사회복지사의 일자리를 늘려주고 사회복지사가 해결하지 못한 업무들을 소화하는 역할까지 했으니, 사회복지사는 가히 이 운동의 수혜자라고 볼 수도 있겠다.
▲ 2005년 6월 29일, 장애인이동권연대 회원들이 지하철 서울역 1, 4호선 환승통로에서 리프트에 쇠사슬을 설치해 몸을 묶으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고 있다. 이들은 “이명박 서울시장은 2004년까지 지하철 전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어겼다”며 “46개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아닌 리프트를 설치키로 한 것을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연합뉴스 |
사회복지사, 조직된 힘이 필요하다!
당사자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차별에 저항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 왜 사회복지사는 함께 존재하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로 조직된 힘의 부재가 아니었을까? 문제를 피부로 느끼고 있지만 혼자 감히 덤빌 수 없는, 그래서 정체되거나 이탈하는 현실이 반복되는, 그것이 사회복지사가 이 시대의 부정의에 덤비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당사자만큼은 아니겠지만, 사회복지사는 빈곤한 사람, 소수자들의 삶의 고통을 가장 많이 피부로 부딪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업무는 당사자들의 고통 안에 놓여 있고, 그 고통으로부터 업무가 시작된다. 지금까지 그 고통에 소극적으로 저항했지만, 사회복지사윤리강령에 대한 성찰과 역사적 경험은 그 고통에 더욱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할 직업윤리를 일깨우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사들의 조직된 힘이 있어야 한다.
지난 3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가장 큰 화두가 무엇인가? 바로 보편적 복지국가의 추진이고 완성이다. 이 이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서울시장을 바꾸고 교육감, 지방자치단체장을 생산해 낼 만큼 어떤 이슈보다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이 복지논쟁에 열광했던 것은 그만큼 이 사회의 고통이 뼈 속 깊숙이 스며들어 있음을 증명한다. 대한민국의 시민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의료, 양육, 주거, 교육, 실업과 빈곤에 대한 두려움은 성실한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있고, 사회복지사는 이러한 절망과 고통 속에 있는 당사자를 매일 일터에서 만나고 있다.
이제 이 고통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사회복지사들이 바깥세상으로 뛰쳐나가고자 한다. 지금까지 복지국가를 막강한 파괴력을 지닌 이슈로 만들어내는데 사회복지사들의 기여한 바를 찾아내긴 어렵지만, 앞으로는 이 이슈를 현실화하는 데 우리 사회복지사들이 앞장서기를 바란다. 사회복지사들이 일터를 사무실이 아닌 세상으로 확장하고 당사자들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여 세상을 바꿔 나아가는 땀방울이 되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달라야 한다. 착한 사회복지사, 복지하청업자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고 세상의 고통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뜻을 같이 하는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모여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라는 단체를 준비하는 이유이다.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로 거듭나자
지난 시간 사회복지사로서의 역할에 대한 반성과 함께 내 먼저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 지난 7월 11일, 내가 속한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약칭 세밧사)’는 다른 복지국가운동단체들과 함께 그 첫 번째 저항으로써 ‘복지국가 만들기 시민촛불’ 문화제를 청계천에서 열었다. 이어 첫 번째 학습으로 8월 18일에는 “복지국가 청년캠프”도 주최한다. ‘세밧사’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세우기 위한 학습과 행동을 꾸준히 해나갈 것이다.
나는 아직은 경험이 부족한 사회복지사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희망하고 있는, 그리고 조직된 힘을 열망하는 사회복지사 동지가 있다면 함께 세상을 바꾸는 땀방울이 되어보자는 말을 건네고 싶다. 내가 처음 사회복지사가 되고자 했던 그 꿈을 진정 이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