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떠난 자리에 무엇이 피어날 수 있을까 – 이명묵대표

그들이 떠난 자리에 무엇이 피어날 수 있을까
– 우리 스스로를 외면하는 아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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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묵 관장(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

(세밧사-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지난 1월부터 5월 사이에 사회복지공무원 4명의 연쇄자살이 있었습니다. 그중의 한 분은  세달 뒤에 결혼식을 예정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네 분의 자살이유는 과중한 업무에 따른 스트레스였습니다. 문제는 이 스트레스가 개인적 스트레스였을까 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잘 견디고 있는데 왜 하필 그 사람들은 …… 식으로. 아직은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의 증언과 언론 취재 결과, 그들의 근무실태는 ‘국가 폭력’ 수준이고 부서 내 ‘깔때기 구조’로 다음의 희생자가 없을 것으로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희생자 한 분의 유서입니다.
“일이 많은 것 정도는 참을 수 있다 ……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인간이기에 최소한의 존중과 대우를 원하는 것이다.

공공조직의 제일 말단에서 온갖 지시와 명령에 따라야 하는 일개 부속품으로서

하루하루를 견딘다는 건 머리 일곱 개 달린 괴물과의 사투보다 더 치열하다.

내 모양이 이렇게 서럽고 불쌍하기는 평생 처음이다 …… “

 

사태 이후 정부에서 이런저런 대책이 나왔습니다만. 구조적 생리와 인력충원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입니다.  8월 중순 한 중앙 일간지에 실린 취재기사입니다.
“다들 이제는 세상에 얘기해봤자 소용없는 거 아니냐고 해요. 좌절의 늪에 빠져 있는 거죠.”

동사무소를 거쳐 지금은 한 구청에서 복지 업무를 담당하는 ㄱ씨(38)는 19일 힘없이 말했다.

“올해 2월부터 복지공무원 4명이 ‘살인적 업무량’을 호소하며 자살을 선택했어요.

그 뒤 반년이 지났지만 바뀐 게 없어요.

언론에 나와 공개적으로 얘기했던 동료들도 이제는 못하겠대요.

상사의 타박만 듣게 될 뿐이니까요.”

 

 

세밧사(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는 이 사건에 항의하는 일인시위를 지난 3월에 시작하여 90일째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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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앞의 촛불시위도 네 번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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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세밧사의 활동에 대하여 사회복지계의 반응은 관망적이거나 부정적입니다.

“당사자인 사회복지공무원이 움직이지 않는데, 우리가 왜 행동해야 하는지 명분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많은 사회복지사가 공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사자들이 움직이지 못하거나 안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세밧사도 답답합니다. 그러나 아픈 사람이 소리 내지 못한다면 누군가 대신 울어주는 것이 ‘연대’라고 봅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사회복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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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의 동향은 참고사항 일뿐, 세밧사가 문제 삼고 분노하는 것은 정부의 태도와 인식입니다.

사회복지사가 4명씩이나 업무상 자살을 하였음에도(그것은 명백히 국가명령에 따른 타살이었음에도)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안전행정부 장관이나 국무총리나 대통령 누구도 책임 있는 사과를 안 한다는 점입니다.

사회복지를, 사회복지사를 얼마나 하찮게 보았으면 이러겠습니까? 보건소의 간호사 4명이 업무상 자살을 했어도, 공립병원 의사 4명이 업무상 자살을 했어도 정부가 이랬을까요? 간호사와 의사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외면하는 정부도 문제이지만, 자신을 외면하는 우리 스스로가 더 문제라고 봅니다.

 

“사회복지공무원은 우리와 다르다. 심지어 그들은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 아니라 그냥 ‘공무원’이다.”라는 민간 사회복지 현장의 인식에 대하여 토를 달지 않겠습니다. 1987년 전담공무원제도가 도입된 이래 민간 현장이 26년간 겪은 결과임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세밧사가 그들의 죽음을 추모하고 항의하는 것에 대한 대답은 마틴 니묄러의 시 「그들이 들이닥쳤을 때」로 대신합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잡으러 왔지 때, 나는 침묵했다.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이 유대인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욱 슬픈 것은, 자신의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호소했던 분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할 것까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분의 유서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지들이 약하고 못나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죽음으로 내 진심을 보여주고 싶다…….

내가 사라진 다음, 뭔가가 바뀌진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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