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 청년캠프 강의 노트입니다

복지국가 청년캠프 때 개인적으로 신정완 교수님의 강의를 노트는데,

살짝 정리해서 공유합니다~

잘 정리된 것이 아니라, 노트 필기이니 양해바라고요,

혹시나 도움이 될까해서 공유하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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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신정완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사회민주주의란 이념이 어떤 성격의 것인가,

어떻게 형성되어 발전해왔나에 대해 강의를 하겠습니다.

#1. 사회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는 오늘날에는 중도 좌파 노선이라 볼 수 있습니다.

특징을 몇 개 보자면 우선 의회질서를 존중합니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와 관련하여, 자본주의 기본질서를 인정합니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인정하고, 주로 시장을 통해 자원이 배분되고

소득이 분배되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적극적 국가 개입, 노동조합의 개입을 통해 분배에 개입합니다.

적극적 재분배원칙을 가집니다.

이런 분배 정책 이외에서도 노동자를 위시한 사회경제적 약자층이

사회적 의사결정에 폭넓게 참여하도록 노력합니다.

또한 노동조합 뿐 아니라 사회 여러 계층의 권익을 지키려 합니다.

민주주의를 떠올리면 정치적 민주주의를 먼저 떠올립니다.

일일일표, 다당제, 의사결정규칙으로서의 다수결 원칙 등입니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원리 바탕에는 평등주의가 깔려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사회적 지위, 성별, 연령과 상관없이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평등주의 원리가 정치 영역에서만 관철될 경우

이 이념이 충분히 구현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곳이 자본주의 토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평등주의이념을 사회의 전 영역으로 확신시켜가자는 이념이

바로 사회민주주의입니다.
사회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대비할 수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Liberalism과 Democracy가 결합된 것입니다.

데모크라시는 기본적으로 누가 통치하느냐입니다.

국가의 주권이 어디로부터 나오는가를 묻습니다.

리버럴리즘은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냐 하는 것인데,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사회를 좋은 사회라고 보고 있습니다.

데모크라시와 리버럴리즘은 갈등이 있습니다.

데모크라시는 평등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추상적으로는 보면 좋고, 아름답지만

자본주의라는 구체적 경제 현실 속에서는,

돈 있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자유에는 차이를 용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가난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일 경우,

부자들의 자유는 제한될 수 있습니다.

기업 활동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둘 간에는 내재적 갈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민주주의는 리버럴리즘에 제약을 가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정치적 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합니다.

종교의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신체의 자유입니다.

이것은 공산주의와 대비됩니다.

공산주의는 사회경제적 평등을 위해서라면 정치적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고 봅니다.

사회민주주의가 정치적 자유에 대해서는 자유민주주의나

공산주의보다 가장 충실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러시아 혁명 이전에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는 모호했습니다.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를 위해 자본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모두 사회민주주의라 했습니다.

막스주의 혁명적 무정부주의, 영국의 개량주의,

독일의 아살레주의, 등등이 사회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모이게 됩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이 되면 막스주의가

사회주의의 지배적 이념이 됩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다양한 사회주의 이론 중에

막스주의가 이론적으로 가장 체계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는 대부분 윤리적 이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도덕적인 꿈을 꾸고

그것으로 대중을 계몽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막스는 윤리적 이상과 공유하면서도,

사회주의는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과학적인 역사적 필연이라고 봤습니다.

과학적으로 자본주의 발전 자체가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역사적 필연이라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자본주의 발전자체가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는 세력을 양산하고,

자본주의 발전 자체가 내부모순을 심화시켜 공황을 만들고,

소위 생산의 소유를 통해 기업이 커지고,

계획적 경제의 필요를 느끼면서 결국 공산주의의 발생을 위한

조건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1890년대가 되면 독일 사민당 내부에서 논쟁이 생깁니다.

이러한 논쟁은 국제 사회주의 운동을 사민주의 운동과

공산주의 운동으로 분열시키게 됩니다.

독일 사민당의 이상은 막스주의에 기반합니다.

그런데 실제 활동에 괴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표를 위해 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핵심 활동가들은 이념에 관심이 없고

선거를 어떻게 이길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어떻게 복지예산을 늘릴까 하는 등 말입니다.

1890년대가 경제적으로도 호황이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막스주의적 혁명을 표방한다는 것이

현실에 맞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이 때 베른슈타인이 막스주의의 수정을 요구합니다.

그는 이념과 현실의 괴리를 많이 느꼈습니다.

특히 농민에 대한 것입니다.

막스주의에 의하면 농민들도 농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생기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업과 농업에 특별한 구분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농민 부르주아가 만들어지지 않고

농민들은 자신들을 지원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사민당에서는 특별한 농민정책이 필요 없었고,

지원하면 분열을 조장하기 때문에 반동적이라 봤습니다.

따라서 베른슈타인은 이런 막스주의를 여러 가지로 비판했습니다.

역사 유물론과 변증법에 대한 비판도 했습니다.

막스 경제학을 비판하는데, 계급 양극화론을 비판합니다.

막스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계급을 나눴지만

독일의 통계를 보면 광범위한 중간층이 있다는 것입니다.

개념적으로는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삶의 수준은 노동자가 아닌 층이 있는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수정하여 지탱하는

형태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자본주의 붕괴를 쉽게 말할 수 없다고 보게 됩니다.

따라서 선거를 통해 집권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농민과 포함하여 대다수를 포섭할 수 있는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논쟁에서 사민당은 베른슈타인이 옳지 않다고 결정을 내렸지만

쫓아내지는 않았습니다. 애매한 상태로 진행됩니다.

이것이 사회주의운동에서 개혁파와 온건파가

만들어지게 되는 배경이 됩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계기는 러시아 혁명입니다.

러시아 혁명에 대해 독일사민당을 포함한 서유럽은 부정적이었습니다.

러시아 혁명은 막스의 정신에 거슬러 만들어진 것이라 봤습니다.

막스는 자분주의가 성숙한 다음, 자본주의 내부의 모순에 의해

혁명이 일어나고, 사회주의가 만들어진다고 했는데,

러시아는 대부분 농민들이었고, 러시아의 모순은 자본주의가 아닌

봉건주의의 모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을 너무 무리하게 끌고 갔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혁명과정을 통해 일당독재가 구현되었기 때문에,

전통적 사회주의 이념을 근본적으로 훼손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은 1차 대전을 통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전에 유럽의 사회주의자는 전쟁에 반대했습니다.

오히려 전쟁을 혁명을 위한 계기로 삼는다고 했는데,

이것을 제대로 지킨 곳이 없습니다.

특히 독일의 사민당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사회주의 경우에는 혁명적 패배주의를 표방하며.

전쟁을 반대합니다.

그래서 러시아와 서유럽의 세력이 갈라서게 됩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서유럽이 러시아를 지지하지 않자,

레닌은 서유럽의 사회주의란 용어를 쓸 수 없다고 보고,

공산주의라는 말을 쓰게 됩니다.

그리고 코뮌테른을 만들어서 국제 사회주의운동이

공산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노선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나 경제체제에 대한 이상과 지향은 비슷했습니다.

모두가 국유화를 주장하고, 계획경제를 주장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도달할 것이냐에 대한 차이가 있습니다.

혁명적 방법과 의회를 통한 방법이었습니다.

#3. 사회민주주의의 여러 모델

서유럽에서는 연립정부의 형태로 사회주의당이 많이 집권하게 됩니다.

그런데 집권 사민당 중에 적어도 강령에서 주장했던 것을

제대로 진행한 곳이 없습니다.

국유화를 하려면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가 필요한데,

그렇세 못한 것입니다.

정책을 만들어갈 힘도 없엇고, 자신감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에 성공적인 곳이 스웨덴 사민당이었습니다.

자본주의를 기본적으로 인정하지만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에 대해 인정합니다.

그리고 국가는 수요관리를 해야 하고,

적극적으로 고용을 창출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케인주 주의를 보면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에 속합니다.

그러나 고용, 빈곤의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상당부분 개입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스웨덴 사민당이 최초로 케인즈 주의를 수용합니다.

케인즈가 논문을 발표하기 전에 시작합니다.

공공근로를 대규모로 실행하고, 농민보호정책도 썼습니다.

보호무역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민당아 농민당과 협력하게 됩니다.

원래 적대적인 우파정당이었는데, 정책연합을 하고, 연립정부를 구성합니다. 사민주의 헤게모니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특히나 가족정책에 대해서 많은 변화가 이뤄집니다.

독일도 사민당이 집권하면서 상당히 많은 노동입법이 시작됩니다.

지금도 노동조합참가제도가 가장 강한 것이 독일입니다.

다만 스웨덴과는 다르게 약점은,

공황국면에서 어떻게 그 시기를 극복할지를 잘 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량실업문제를 해결 못했습니다.

그 틈에 히틀러가 집권한것입니다.

영국의 경우에도 노동당이 집권했는데 큰 성과는 없었습니다.

서유럽의 사민주의 전성기는 2차 대전 이후부터 1960년대 말까지입니다.

이 때는 자본주의의 황금기입니다.

따라서 경제적성과가 좋기 때문에 개혁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좋았습니다.

세금을 많이 걷을 수 있어 많은 개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전쟁 자체가 도움을 많이 주었습니다.

국민적 단합, 일체감이 생깁니다.

그리고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여했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개혁이 유리한 상황이었습니다.

2차대전 직후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영국입니다.

에틀리 수상 아래 대규모 국유화를 진행합니다.

또한 NHS시스템이 도입됩니다.

#4. 사회민주주의와 스웨덴

스웨덴은 성과가 가장 좋았습니다.

이 때 스웨덴 모델이 만들어집니다.

스웨덴의 경제체제는 굉장히 자유주의적입니다.

그러나 사회정책은 굉장히 평등적이고 국가개입이 높습니다.

온 국민을 위한 보편주의를 지향합니다.

스웨딘의 경제는 대기업위주였습니다.

수출대기업이 경제를 이끌고 갑니다.

기업의 의사결정에 국가가 개입하지는 않았습니다.

대기업에게 유리한 정책을 썼지만,

재벌총수와 명시적 타협을 진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

또한 케인즈의 거시정책을 받아들였고,

완전고용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보편주의 복지국가입니다.

보편적 복지는 모든 프로그램을 보편적 서비스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다수 사회구성원이 세금으로 기여하고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지향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조합주의입니다.

사회적 합의주의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정부가 정책을 입안할 때 사회 단체들의 의견을 반영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조합입니다.

문화적 차원에서는 대화와 타협을 지향하고, 실사구시를 지향합니다.

사민당에는 극좌와 극우파가 없습니다.

그러니 상당부분 타협이 됩니다.

단독으로 득표율을 50%넘게 받은 적이 없습니다.

서독의 경우에는 2차 대전 이후에 사민당이 아니라

기민당이 정치를 주도합니다.

서독의 2차 대전 이후를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의 강조는 시장경제에 잇습니다.

사회적이란 것은 사회 공통의 이익을 위해 국가가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반독점 정책입니다.

그리고 사회복지적 정책입니다.

그러나 경제적 분야의 정책은 보수적이어서,

완전고용보다는 물가조정을 주로 진행했습니다.

과거의 물가조정 실패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물가정책의 기조를 유지합니다.

스웨덴은 개혁정책을 쓰면서 막스주의와는 멀어집니다.

물론 막스주의를 거부하지 않습니다.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부분적으러 부정하는 것입니다.

막스주의로 현대자본주의를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느낍니다.

또한 소련 공산주의는 막스주의를 잘 계승하지 못했고,

오히려 서유럽의 사민당이 더 잘 계승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5. 사회민주주의의 특징

사민주의가 되는 경로는 다양하다고 봅니다.

그 경로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럼 사민주의가 다른 이념들과 다른 것은 무엇일까 물을 수 있습니다.

사민주의는 특정한 이념이나 세계관이 아니라 가치를 가지고 판단합니다.

자유, 평등, 연대, 박애 정신입니다.

이것은 프랑스 혁명에 등장했던 것인데,

사실 이러한 가치를 표방하지 않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자유와 관련해서는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볼 수 있는데,

소극적 자유는 전통적 자유입니다.

타인의 간섭과 억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적극적 자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기회와

자원를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사민주의자는 소극적 자유는 기본이고,

적극적 자유까지 보장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평등도 좁은 의미의 자유주의자는 법적 평등을 말합니다.

조금 더 진보적인 사람은 기회의 평등을 말합니다.

사민주의자들은 결과의 평등까지 바라본다.

전성기 사민주의의 특성을 보면 전체적으로 정치적 자유주의를 존중합니다.

경제적 자유를 위해 정치적 자유를 침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에 대해서는 상당히 유보적이고

제한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

또한 자본주의를 인정하되 상당한 부분 국가가 개입합니다.

이렇게 복지국가 노선을 설명하면 생산수단의 사회화 보다는

소비의 사회화를 신경씁니다.

소비의 자유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생산수단의 사회화에 대해서 이념적으로는 포기하지 않았으나,

국유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과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념적이 아니라 사회공학적으로 접근합니다.

또한 노동자의 권익을 강조합니다.

정치적으로도 노동조합과 협력해왔습니다.

또한 다양한 약자들을 보호하고자 합니다.

1970년대는 사민주의가 어려울 때입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합니다.

그러면서 80년대에 들어서서는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됩니다.

완전고용을 포기하고, 물가조정으로 나아가고,

사회복지 지출을 줄이려하고,

노동조합을 약화시키는 입법을 하기 시작합니다.

시장근본주의적 흐름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또한 장기적 경향으로는 탈산업화 경향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제조업의 비중이 줄어들게 됩니다.

블루컬러들의 비중자체가 줄어드니,

사민당의 가장 큰 지지자였던 사람들이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업구조가 전환되면서,

노동계급자체가 굉장히 다층화됩니다.

고수익을 올리는 노동자들이 발생하게 되고,

하층 불안정 노동자가 발생하게 되고,

노동계급의 동질성이 약화되었습다.

노동계급 내부의 이해관계가 다양해진 것입니다.

또 하나는 60년대 까지 사민주의가 성공하여

어느 정도 틀을 만들어놓게 되면서,

그들의 열정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평범하게 살아도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사민당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투표의 유동성이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금융세계화가 진행되었습니다.

노동자의 권익을 높이려 하면 자본이 외국으로 빠져나가게 되는

상황이 많아집니다.

자본이 나가지 않게 하면서 친기업적 정책을 쓰게 되었고,

사민주의정당이 들어서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89년부터는 소련이 붕괴하게 되는데,

이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목소리가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토니 블레어가 제3의 길을 주창하기도 해습니다.

금융자본주의의 헤게모니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재분배를 하게 됩니다.

사민주의 정당의 우경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6. 사회민주주의의 한계

사민주의의 한계를 이야기 하면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자본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시스템을 구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사민주의는 표방하는 이념이 무엇이건 간에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비교적 평등주의적인 재분배 정책을 하자는 것입니다.왜 이렇게 되었는가?

1. 사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여 안정적인 경우가 없다.

그러다보니 표를 얻어야 하고, 제대로 진행하기 어려웠다.

2. 선거의 딜레마. 의회주의 노선은 위험을 수반하지 않고,

인정받을 수 있지만, 급진적 개혁을 하기는 힘들다.

광범위한 조직이 필요하기에 중간계층으로 지지폭을 넓혀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관성이 약화된다. 자본가계급을 심하게 침해할 수 없다.

자본가계급은 사회적 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크게 침해하기 힘들다.

의사결정이나 소유권을 침해하기 어렵다.

3. 개량이 딜레마. 성공을 하게 되면 만족하게 되고, 기존 체제에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발생합니다.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발생합니다. 일반 대중의 정서와 멀어지는 것입니다.

4. 자본주의 경제 순환이라는 것이 있다.

호황에서는 사민주의적 개혁이 쉽다. 그러나 불황일 때는 어렵다.

경제회복의 키는 자본가에게 있고, 그들에게 친화정책을 펴게 된다.

5. 서유럽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비유럽지역의 사민당은 일본, 이스라엘, 브라질, 인도 정도다.

그러나 대부분 취약하다.

동구지방에서 만들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영향력이 취약하다.

6. 국제정치질서를 평등하게 바뀌어 가는데 있어서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냉전질서와 국가가 격차에 대해 별로 개입하지 않았다.

선진국 이기주의측면도 있다.

#7. 한국에서의 사회민주주의

2차대전 이후 제3세계 사민주의 운동은 공산주의운동이었다.

왜? 대부분 식민지였기 때문에 반제국주의를 지향했고,

자연스럽게 반자본주의로 나갔기 때문입니다.

둘째, 소련과 중국 같은 나라들이 제3세계를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독립이후에도 많이 개입합니다.

또한 초반에 소련의 경제 성장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입니다.

사민주의 정당의 조건이 있습니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형성, 일정한 산업노동자 인구.

그런데 이런 조건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농업 위주였고,

근대적 산업노동자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분단문제까지 있었기에 더 심했습니다.

그러나 사민주의 흐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여운형이 있습니다.

이념 노선이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였고,

사회주의적 요소가 상당했습니다. 그리고 민족주의자였습니다.

중도좌파로 볼 수 있습니다.

1950년대에는 진보당이 있었습니다.

식민지시대의 공산주의자였던 조봉암이 당수였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사회경제적 개혁, 평화통일노선을 지향했습니다.

이만큼 성공적이었던 좌파는 없었습니다.

4.19직후에 여러 혁신 정당이 만들어 지고,

김철희라는 사람이 계속 그 노선을 지지해왔습니다.

80년대에 민주화운동이 가속화됩니다.

급진적 혁명 운동이 벌어지게 됩니다.

NL/PD노선이 있었고, 이 때 사민주의가 들어설 틈은 없었습니다.

한국 현실과는 맞지 않았습니다.

NL/PD노선은 노동운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학생운동은 추상적 이념, 거대담론으로 가게 되어있고,

그렇기 때문에 급진주의로 가게 되었습니다.

90년대 들어서야 사민주의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소련붕괴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것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사민주의로 오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87체제 이후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민주주의 제도를 활용하여 사회개혁을 하면 된다는 사고가 생겨났습니다.

또 하나의 계기는 97년 외환위기입니다.

이것을 통해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정치적 민주화만이 아니라

경제적 민주화에 대한 시도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민주의에 대한 생각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사민주의는 지역연구 수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2001년에 사회민주주의 연구회가 만들어지게 되면서

사민주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연구회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2003년에 한국사회민주당을 만든다.

그러나 곧 해산되었습니다.

우리 정당 중에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은 없습니다.

민주노동당은 국가사회주의와 사민주의를 넘어서는 것에 대한

지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실질적이지는 않습니다.

지금의 NL도 사민주의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표방하지는 않습니다.

진보신당의 이념은 사민주의 좌파에 가깝습니다.

현재 사민주의와 가장 친화적인데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광의의 진보세력과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사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범진보적 세력이 표방하는 것은 복지국가이고,

그것의 이념은 사민주의입니다.

이것이 이념적으로 정리가 잘 안 되어있고,

정치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지만,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8. 한국에서 사민주의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첫째, 정치적 자유주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이다.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신체의 자유를

체제적으로 억압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둘째, 자본주의의 모순을 인정하고, 시정해간다.

어느 정도 시정하느냐에 대해서는 열려있다.

그러나 적어도 분배 문제에 있어서는 상당부분 가능할 것이다.

셋째, 의회민주주의를 존중하고, 의회민주주의를 통해 개혁을 만든다.

그러나 이것은 대중의 직접행동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중운동과 함께 가되, 무게 중심을 정당에 두는 것이다.

대중의 봉기에 많은 기대를 걸 수는 없다.

최종적으로는 정당과 연합해야 한다.

넷째, 시대적 과제로서 한 세대의 핵심과제로는

복지국가의 건설을 내세워야 할 것이다.

다섯째, 노동자와 빈곤층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약자를 우선해야 한다.

좌파정당들도 정치공학적으로 접근 하다 보면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게 된다.

사실 가장 약자는 조직되지도 않고, 발언을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진정한 진보라면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북한문제가 큰데,

사민주의자라면 북한에 대해 비판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글로벌 차원의 정의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린 노동자 조직률이 너무 낮습니다.

스웨덴의 LO는 제조업의 50%를 조직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노조의 기반이 너무 취약합니다.

이념적으로 훌륭해도, 공중에 붕 뜰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한국의 노조운동은 대기업 정규직 위주로 정착되었기 때문에,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참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념적으로 덜 계몽되어있고,

독재냐 민주주의냐에 대해 너무 집중해있었습니다.

그러한 관성을 넘어설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대통령 선거제는 진보정당에 불리합니다.

양당제로 가야 진보정당에 유리합니다.

스웨덴은 의원내각제에다가 100% 비례대표제입니다.

우리의 대통령제는 무책임을 양산합니다.

정당의 자산과 부채를 함께 계승해야 하는데 자산만 계승하려 합니다.

이념과 정책 중심의 정당으로 가기 힘듭니다.

그리고 지역구도의 정치가 양화되고 있으나 여전히 힘이 있습니다.

또한 전체적으로 우경화되어있습니다.

경제학자는 압도적으로 그렇습니다.

또한 사민주의운동은 서유럽에서 발생했습니다.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이질감이 큽니다. 친숙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우리와 관계가 별로 없습니다.

사민주의가 한국에서 성공하려면, 토착화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조건과 역사 안에서 토착화가 되어야 합니다.

우린 그 조건이 열악합니다.

사민주의와의 관계에서 유의미한 것을 끄집어내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사민주의 이념을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현실화 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각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스웨덴이 성공한 이유는 이념 토착화입니다.

역사를 부정하지 않고, 그 역사를 계승하는 스토리를 만들어냈습니다.

한국의 역사에서 사민주의에 유리한 민주화운동이랄지,

좀 더 평등과 공동체적인 이야기를 가져오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스웨덴은 그렇게 했습니다. 상관없는 이야기를 끌어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우리 또한 거리가 멀더라도, 긍정적인 것들을 가져오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민주의가 지배담론이 되려면

한국 사람이 가진 문화 정서적 자원들을 끌어오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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