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사회복지사가 만드는 복지국가

청년 사회복지사가 만드는 복지국가

이명묵

21세기 오늘을 살고 있는 한국인, 그중에서도 청년의 세대적 사명을 생각해본다. 20세기 전반, 우리 선대는 조국 독립을 위해, 해방 직후에는 통일을 위해 싸웠다. 한국전쟁으로 폐허된 나라를 지독한 가난에서 일으켜 세워 오늘의 물질적 풍요의 기초를 다진 분들이 지금의 70~90대다. 30여 년간의 군부독재와 맞서 (정치적)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이 땅에 자유의 길을 열은 분들이 지금의 50~70대다. 20세기 한 세기 간의 선대의 헌신으로 독립과 풍요와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오늘을 사는 20~40대는 (삼포세대의 고통을 안고 있음에도) 선대 3대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선대의 각 세대는 살았던 시대는 달라도, 본인들이 겪고 있는 시대적 고통을 후대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생각은 같았다고 본다. 당대의 과제를 외면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21세기 초반, 이 시대의 과제는 무엇인가? 나는 다음의 여섯 가지를 꼽는다 – ‘분단의 고착과 통일의 미제’, ‘물질 예속의 가속화 속에서의 인간성의 피폐화’, ‘양극화의 심화’, ‘고용문제에 따른 현실의 불안’,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미래의 불안’, ‘불완전한 민주주의’. 이는 곧 여섯 가지 대안 – ‘평화’, ‘정신문화와 탈상품화’, ‘사회연대’, ‘일자리’, ‘생애복지’, ‘온전한 민주주의’ -을 목표로 삼게 한다.

6대 과제의 해법은 ‘복지국가’

그러면 이 대안의 근간들은 무엇일까? ‘평화’는 국내뿐만 아니라 남북한과 동북아의 국제정치 지형과 밀접하여, 사실 “복지국가가 답이다.”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머지 다섯 가지에 대한 대안의 근간으로는 ‘복지국가’가 최적이고 최선이다. 물신주의는 정신의 결핍에서 오기도하지만 보통은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일상 생존의 조건(교육, 일자리, 주거, 보건, 노후)이 각자도생에 맡겨짐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흥하는데, 보편적 복지로 개개인 삶이 불안하지 않게 되면 물신주의 기세가 수그러든 자리에 정신문화가 들어서 인간성이 회복될 것이다. 물신주의와 금융자본주의(21세기 천민자본주의, 약탈자본주의)가 낳은 양극화는 사회집단 간, 경제단위 간, 지역 간에서 발생되는데, 그 격차를 완화하고 사회경제지역적 통합을 이끌어내는 것은 각 단위 간의 평등성을 존중하는 사회연대 틀의 기둥인 복지국가에서가능하다.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뿐만 아니라 고용의 심리적 안정은 노동과 복지를 연계하는 복지국가 체제가 대안이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재정 부담이 크지만 경제적 효과가 가장 큰 것으로, 생애 주기별 보편적 사회정책이 체계화된 복지국가 전략 없이 인구문제 해결책은 없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쟁취한 1987년 이전을 제1의 민주화 운동기라면, 이후 25년이 지난 시점에 사회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를 논하는 것은 온전한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제2의 민주화 운동이다. 2010년대에 제2의 민주화 운동을 준비하는 것은 46년 전에(1966년) 선포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따른 인권운동이기도 하다. 즉 정치적 민주주의에 이어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사회적경제적 권리를 담보하는 복지국가 체제를 갖추자는 것이다.

복지국가 담론이 더욱 뜨거워야 하는 이유

우리나라에서 2010년부터 회자된 ‘복지국가’ 담론은 일부 싱크탱크와 학자들과 시민사회단체가 촉발시켰고 그것을 정치권과 매스미디어에서 받아 활용였으나, 2012년 4.11 총선이 끝나면서 1차 흥분기는 가라앉았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2012년 총선과 대선까지 약 2년간의 정치시즌과 맞물려 복지국가 담론은 상당히 정치적이었다. 여야 모두 역사적 철학적 고민이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표퓰리즘적이었던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복지국가 논쟁을 정치권에만 맡겨두면 이러한 악순환은 반복될 것이다. 최근 복지국가 담론의 후퇴가 안타깝기는 해도, 재정비 기회로 삼는다면 오히려 호기일 수 있다.

복지국가 담론이 더욱 뜨겁게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당장의 우리 사회 6대 과제에 대한 해법으로 복지국가 이상의 최적의 대안이 없다는 점과, 둘째 지난 50년 간 성장일변도의 국가경영에 따른 공과를 건강한 국민공동체로의 전환이 필요한 지점에 다달았고 새로운 국가이념은 복지국가이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과, 셋째 전혀 이질적 체제이면서 심한 격차를 보이는 북한과의 통일을 대비한다면 남북한 주민이 융합할 수 있는 있는 체제를 고민해야하는데 경쟁보다 연대를 원칙으로 하는 복지국가가 남한에서 먼저 운용되어야 한다는 점과, 넷째 글로벌 국가 경쟁시대에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생존을 위해서도 복지국가는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러면 복지국가 논쟁은 누가 주도하고 누가 참여해야 하는가? 지금까지의 대중논쟁은 ‘정당’과 ‘선거’가 주도했다(지식인 논쟁은 진보적 싱크탱크들이 주도했고). 그들의 관점은 표퓰리즘 일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국민들 관점의 표퓰리즘을 생각한다면; 정당이 국민을 향하여 “복지를 줄 테니 표를 주세요.”가 아니라, 국민이 정당을 향하여 “복지국가를 받으면 표를 주겠다.”가 되는 것이다. 국민이 주권자이고,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권리에 기반한 국민의 정치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세금 더 낼 테니 나와 내 자식의 사회적 경제적 권리를 보장하라”가 된다. 그런데 한 나라에서의 (복지)국가 상은 국민들의 합의 수준 그 자체이기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국민의 사회철학적 인식이 최대 변수로 등장한다. 보편적 복지정책은 거지근성만을 키울 뿐이라고 주장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다가는 남유럽 국가들 꼴 난다고 확신하는 국민도 많다.

복지국가 담론은 현장 사회복지사가 주도해야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 사회복지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복지국가 담론이 사회복지학자나 사회복지사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것에 자존심이 상할 수 있다. 사회복지 현장의 일상과 연관이 없어 보일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복지현장의 사례들 대부분이 복지국가 시스템 부재의 현실과 직결되어 있다고 본다.

먼저 현장 이야기. 사회복지사가 만나는 클라이언트 개인의 문제는 대개 가족의 문제이고, 가족의 문제는 지역이나 사회구조의 문제이고, 그 문제는 사회정책이나 사회체제와 연결됩니다. 사회복지서비스는 사랑이고 전문가적 영역으로 사회복지사 개인의 역량이기도 하지만, 그 스펙트럼의 근저에는 우리 사회 공공 안전망(사회보장)의 역량이기도 합니다.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지 않고서는 현장의 문제는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즉 개인의 문제를 개인과 가족의 문제로 한정짓기 보다는 사회적 관점에서 인식하고 공공의 체제를 갖추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사회복지사가 복지국가 논쟁과 운동의 주체세력으로 나서길 간절히 소망한다. 복지국가 담론의 주요 이슈는 보육교육, 일자리, 주거, 건강, 노후이다. 이것은 사회복지학과에서 공부했던 최우선 사회보장 주제이고, 국민의 복지권과 사회권인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 가장 마땅한 전문가는 사회복지사이다. 이 다섯 가지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주민들을 전국의 사회복지사는 일상으로 만나고 있다. 그들의 문제를 지금까지는 사회복지사 개인이나 복지시설 단위 차원에서 지원하고자 했다면, 복지국가 담론은 (일시적 대증적이 아닌)사회적 공공의 차원에서 일상의 체계로서 고민하는 것이다.

연말이면 매스컴에서 백혈병이나 소아암 환아 치료를 위한 모금프로그램을 한다. 이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생명을 모금성과에 의존한다? 대한민국에는 국민의 나라가 없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사회복지사는 케이스워커이고 프로그램워커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소셜워커로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전문가이다. 세상을 바꾸는 활동가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기에 너무 힘들어하는, 고통 받고 있는 국민들의 삶을 속속들이 그 실상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집단이 사회복지사이다. 복지정책은 현장에서 나와야 한다. 복지국가 담론은 현장 사회복지사가 주도해야 한다.

청년사회복지사들이 21세기 대한민국을 바꿨다

앞으로의 복지국가 쟁점은 크게 두 가지 일 것이다. 하나는 어떤 유형의 복지국가냐. 영미형이냐 북유럽형이냐 아니면 제3의 모델이냐? 또 하나는 개별 이슈이다. 무상의료, 국민연금, 비정규직, 대학등록금, 아파트값, 실업과 비정규직, 복지재정과 증세 등등. 물론 이러한 이슈를 본인들의 과제로 이해하는 사회복지사가 많지 않다. 사회복지가 ‘삶의 질’의 문제라고 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국민들 삶의 질을 좌우하는 이러한 문제에 사회복지사가 천착하는 것은 떠안아야 될 직업적 책임이다. 지금까지 사회복지사는 긍정적으로는 ‘사랑의 천사’, ‘복지헌신자’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부정적으로는 ‘온실 속의 난초’, ‘월급쟁이 복지사’, ‘정부 복지정책 하청업 종사자’ 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게 다일까?

청년 사회복지사가 복지국가 담론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주도적으로 운동하는 것은 피동적 복지실천가에서 능동적 복지활동가로 정체성을 변환하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사회경제적 권리로 인식하면서 제2의 민주화 운동 또는 인권운동을 통하여, 우리 사회에서 주변인으로 한 발 물러섰던 자리에서 ‘선구자’로 자리 변환하는 것이다. 여섯 가지 이 시대의 과제를 사명으로 고민하면서 복지국가 운동에 앞장서는 것은 청년 사회복지사들이 ‘세대적 책임’을 자임하는 것이다. 그래서 21세기 초반을 살았던 청년 사회복지사들이 한국사회 복지국가 운동을 주도했다고, 그들 때문에 5천만 국민의 삶의 질이 달라졌고 사회연대가 구축되었다고, 평가받기를 기대한다.

<위 글은 프레시안(2012.8.9.)에 게재된 것을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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