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책 고전 『인구 위기』 강독회. 9월 21일

사회정책 고전 『인구 위기』 강독회.

“100번은 들어 봤어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책을 읽어보자”는 사회복지 고전 읽기 운동, 담담(潭談). 앞서 읽은 책은 『베버리지 보고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복지국가의 철학』, 『올리버 트위스트』, 『선물관계』였습니다.

여섯 번째 책은 유명한 사회정책 고전임에도 뒤늦게 번역 소개된 뮈르달 부부의 『인구 위기』입니다. 1930년대 스웨덴 저출산 고령화 사회문제에 해법을 제시한 책이고, 이 정책 제안이 이후 40여 년간 실행되면서 스웨덴의 복지국가 기둥 중 하나로 꼽힌 책입니다.

저자 칼 군나르 뮈르달(Karl Gunnar Myrdal, 1898년~1987년)은 경제학자 사회학자 저술가로 1974년 영국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부인 알바 뮈르달(Alva Reimer Myrdal, 1902년 ~1986년)은 사회학자 정치가 외교관으로 198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스웨덴은 두 사람의 제안을 어떻게 수용하고 실천했는지. 90년이 지난 지금에도 타석지석이 될 수 있는지. 관심 있는 사회복지사와 시민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사회정책 고전 『인구 위기』 강독회

일시: 2024년 9월 21일(토) 오전 10시~ 오후4시.

장소: 사회복지책마을 (파주 지혜의숲 내)

이야기 손님: 홍재웅(『인구 위기』 번역자, 한국외국어대학교 스칸디나비어과 교수)

참가비: 3만원. (세밧사 회원, 책마을 회원 2만원)

참가 신청: 신청링크: https://forms.gle/s6vQe5erpxns6XK48

신청 문의: 010-8823-0625

장소 문의: 010-4311-0743

사전 요약 유튜브 <아침에는 책들 보고 교양을 먹어야지>

https://www.youtube.com/watch?v=ChwWzDUg0K0

 

 

나의 노후 대책? 연금디자인 어떻게 할 것인가?

“노후 대비”

건물주 빼고 모두가 이 영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국민연금 왜 개혁해야 하는가?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 것이 나와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가?                                    나의 노후는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

지난 5월 21대 국회 마지막 시간에 뜨거운 뉴스 중 하나가 국민연금 개혁이었습니다.    불과 한두 달 사이에 이 뉴스는 “쑤욱” 들어가 버렸지요.

정치권도 언론도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사회정책 진전이 더디다고 봅니다.

우리 자신의 노후가 각자도생이 아니라 합리적 사회정책으로 안전하게 보장될 수 있다면그것이 복지국가 구현이겠습니다.

세밧사는 복지국가촛불 후속으로 “복지이슈 대담”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노후에 관심 있는 분들과 이 영상을 공유해 보세요.

<연금개혁과 노후 설계> 유튜브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iKV5DE4in1w

#국민연금 #국민연금개혁 #오건호 #복지국가 #세밧사

 

복지국가 아카데미 <사회주택> 유튜

세밧사는 복지국가를 상상하고 학습하는 <복지국가 아카데미>를 유튜브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번 공개되는 ‘사회주택’ 주제 영상은 주거복지와 공공주택에 관심 있는 분에게 도움이 될 것이고, 일반 시민에게는 주거와 주택의 개념을 새롭게 해 줄 것입니다.

영상 제작은 최근 화제의 신간 『어쩌면, 사회주택』을 집필한 최경호 선생님과 청년 정치인 김혜미 선생님과의  대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회주택. 여러 주택 유형 중….. “사회적 가치를 품은 듬뿍 주택”을 말합니다.

빌라, 아파트, 전원주택… 이런 주택의 대부분은 민간 주택업자가 시장에서 파는 사유재로 당연히 영리(사익)가 중요합니다. 파는 사람은 최대한 비싸기 팔려고 하고, 일단 산 사람은 값이 많이 올라 큰 차익을 기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장 욕망입니다.

공공(임대)주택은 LH나 SH, GH 등 광역단체 산하 주택공사 등 공공기관이 공급하는 ‘공공재’로 사회권(주거권) 가치에 부합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6%에 불과합니다.

민간주택과 공공주택 사이에서 민간주택처럼 지나치게 영리를 추구하지도 않고, 공공주택처럼 획일적이거나 관료적이거나 경직되지 않아….. 지속가능성 유지 정도의 재정관리와 개별성과 공동성이 공존하는 주거문화를 스스로 창조하고 운용하는 ‘사회재’로서의 주택이 사회주택입니다.

꽤 괜찮은 것 같은데, 이제 7천 호 정도로 전체 주택의 0.035%이니…. 이제 시작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주거의 탈상품화, 주체적 주거권, 주거의 사회권… 이런 개념어 보다는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은 정말 ‘집’일까?” 질문으로 시작하여                                            “사회가 주택을 만들고, 주택이 사회를 만든다.”는 문장으로 끝나는 꽤 흥미로운 신간  『어쩌면, 사회주택』 저자 최경호 선생님과의 집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사회주택 유튜브 영상>: 세밧사 복지국가 아카데미

https://youtu.be/ZmILMUHSSSw

지역에서 주거복지 한 번 제대로 해보고 싶은 분은 연락주세요.
함께 하는 길을 열어 봅시다 !  sebasa13@daum.net

#사회주택 #주거권복지국가 #복지국가아카데미 #세밧사

티트머스 <선물관계> 강독회. 6. 15.

세밧사 회원 책모임 ‘담담(潭談)’이 2024년 6월 15일(토) 티트머스의 <선물관계>를 번역자 김윤태 교수님과 함께 강독회를 가졌습니다.

시장만능주의가 득세하는 요즈음, 오히려 공동체성이 모든 이들에게 양질의 복지를 나눌 수 있음을 증거하는 책이기에 의미가 있었습니다.

 

복지고전 <올리버 트위스트> 강독회. 04. 20.

세밧사 회원 학습 모임인 ‘담담(潭談)’은 “100번은 들어봤어도 한 번도 안 읽은 고전을 읽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습니다.

<베버리지 보고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복지국가의 철학>에 이어 네 번째 읽은 책은 산업사회 사회문제를 다룬 <올리버 트위스트>를 번역자 윤혜준 교수님과 함께 했습니다.

 

<복지국가의 철학> 강독회. 03. 09.

세밧사 회원 복지고전 세 번째 강독회가 2024년 3월 9일 열렸습니다.

왜 복지국가인가? 왜 사민주의 복지국가인가? 질문에 변증법적 질문과 응답을 찾아나가는 책  <복지국가의 철학> 저자 신정완 교수님과 함께 했습니다.

강독회는 세밧사 회원이 기획하고 주관하는 책모임으로 “백 번은 들어봤어도 한 번도 안 읽은 책”을 저자나 번역자와 함께 공부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정치를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 <사회복지사가 알아야 할 정치개혁> 특강

2019년 새해 첫 세밧사 특강
‘정치를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 – 사회복지사가 알아야 할 정치개혁

작년 10월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첫 전체회의를 통해 시민들의 삶을 반영하는 정치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국회는 거대 정당들이 자신들의 지역구를 챙기고, 국회의원의 특권을 키우는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이럴때 필요한 것이 ‘정치혐오’ 일까요?
정치혐오로 발생하는 정치문제들의 가장 큰 피해자들은 사회적 약자입니다.
또한 민심을 반영하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위해서 선거제도 개혁도 필요한 때입니다.

복지국가를 염원하고, 사회복지현장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만나는 우리에게 정치개혁이 가져오는 변화는 무엇일까요?
같이 공부하고 이야기 나눠보았습니다!

<1부 강연 14:00-15:00>
정치개혁이란 무엇인가? (허승규 녹색정치 활동가)

<휴식시간 15:00-15:20> 명함나눔 & 인사 ‘나는 왜 이 교육에 왔는가?’
*기관에 근무하고 계시는 분들은 명함을 가지고 오세요.(명함을 나누면서 자기소개, 인사)

<2부 토크콘서트 15:20-16:30 / 사회: 최영선(비례민주주의연대 사무국장)>
박종규(세밧사 운영위원) / 이상희(녹색당 서울시당 공동운영위원장) / 허승규(녹색정치 활동가)

□ 주최 : 도서출판 인간과 복지
□ 주관 :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 허승규 강사님의 강연 후기!

한국 귀국 다음날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들의 정치개혁 강연을 하였습니다. 정치혐오를 넘어서는 정치개혁, 정당을 키우는 정치개혁, 선거제도를 바꾸는 정치개혁 3갈래를 이야기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20세기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 역사는 정치+정당+리더십+선거제도+교조주의가 아닌 다원주의+사회비전의 총체적 산물이므로, 사회복지 문제의 정치화 경로를 고민해야한다, 내용은 21세기적인 변화를 담고, 방식은 지금보다 훨씬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마무리 하였습니다.

토크콘서트에선 다당제 구도 하의 극우세력의 분화, 진보정당 원내진입 이후 정책차별성 증가,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 연동형 비례대표제 전제 없는 권력구조개편 논의 반대, 2019년 4월 재보선 노회찬 지역구 수복으로 선거제도 개혁 교섭단체 복원, 2020년 총선까지 선거제도 개혁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말고 함께 가자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현장에서 수고가 많으신 사회복지사 분들 앞에서 강연을 할 수 있어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배우는 자리와 인연 만들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사회복지사 여러분 감사합니다.

사진촬영: 라용(녹색당)

[진보의 내일을 찾아서] 진보의 성찰4 ‘미국민주당의 혁신은 어떻게 가능했나2(안병진) -강연 다시보기-

미국민주당의 혁신은 어떻게 가능했나 2

2004년 이후 시민 네트워크 정당으로의 혁신의 명암

 

 

안병진 (경희사이버대학교 미국학 교수)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요지는 지난 강의와 정반대입니다. 지난 주 클린턴이 마켓팅을 통해 보여준 자본, 과학성의 힘들을 통해 공화당에 승리했던 긍정적인 지점들을 말씀드렸다면, 바로 그 점이 미국 민주당의 위기를 가져왔다는 것이고, 클린턴 제국이 오바마라는 초짜에게 패배한 이유라는 것입니다. 클린턴 시대에 마크 펜이란 자본의 대표적인 마켓팅을 통해 선거에서 승리하기도 했지만 그를 통해 민주당의 진정한 기반이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존재했는지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풀뿌리 운동이 기반인 그 민주당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선거를 도와준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귀찮아 진 것입니다. 그저 텔레비전에서 광고로 하면 탁월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경험은 이러한 풀뿌리 운동의 혼과 기반을 잃어버리게 했습니다.

미국의 탁월한 저널리스트는 이를 사이비 이벤트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이 무엇이냐면 정당의 대변인이 기자회견을 할 때, 30~40명의 수준을 넘지 않는데 이것이 굉장히 이상한 일입니다. 과거의 선거가 대중동원의 선거였다면, 지금의 선거는 기자를 통해 얻는 정보를 가지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미디어의 현실이자 정치현실인 것은 분명한 것이고 분명합니다.

한국도 미국과 영국에서 훈련받은 정치학자들이 정치개혁특위를 하면서 지구당을 없애버립니다. 비효율 구조의 정치를 고친다는 명목으로 대중과의 접촉면을 없애버립니다. 저는 반대한 사람 중 하나였는데 미국조차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미국 정치를 배우기 위해서 선거에 참여했을 때 주로 했던 것이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유권자등록을 받는 일이 었습니다. 가가호호 풀뿌리 접촉이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이것에 대한 반성이 지금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고, 클린턴의 실패는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당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것뿐만 아니라 자본에 충실한 정책으로 인해 NAFTA와 같은 북미자유무역협정을 낳아버립니다. 이때 공화당의 엄청난 지지를 얻었고 민주당 일부표와 공화당 다수표의 지지를 얻어 NAFTA를 통과 시켰습니다.

노동층은 엄청나게 분노합니다. 클린턴을 누가 만들었고, 누가 유권자등록을 받았는데, 이러한 배반에 대해 분노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클린턴 섹스스켄들이 터지면서 더욱 위기로 빠져버리게 됩니다. 심지어 백악관 대변인 출신인 조지 스테파노프스라는 정치인은 정신과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클린턴을 도와 눈물 젖은 빵을 먹는 사람들,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백악관에서 하고 싶었는데, 하는 일이 고작 공화당의 공격을 막기 위해 공화당의원들의 뒷조사를 하고 그걸 폭로하여 방어하는 일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클린턴을 이어받는 민주당의 후보들은 클린턴보다 더 엘리트주의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엘 고어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부시도 엘리트 출신이지만 부잣집 아들처럼 행동하진 않습니다. 미국선거는 한마디로 정리하면 ‘누가 나의 응접실에서 차를 먹을 것인가’가 선거의 승패를 결정합니다. 고어보다 더 서민의 친구 같은 부시를 미국은 선택한 것입니다. 거기다가 공화당은 칼 노브라고 하는 걸출한 귀재를 갖게 됩니다. 이 사람은 아주 어릴 때부터 정치전략을 훈련받았습니다. 미국은 고3정도면 정치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정치적으로 상당히 훈련되어 있습니다. 이제야 우리나라 국제학교 같은 경우는 스포츠를 하거나 디베이트로 갑니다. 우리나라 보수는 천박한 보수입니다. 진정한 보수는 육체의 건강함의 힘을 아는 것이 진짜 보수입니다. 아이들을 보충수업으로 약골로 만드는 보수는 천박한 보수입니다.

칼 노브는 대학 때 이미 상대 캠패인 진영에 스파이를 심어서 그 스파이가 거기에서 실수하도록 만드는 일을 할 정도로 정치적 훈련이 되어있었는데 이것이 발각이 돼서 비난받기도한 일화도 있습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훈련된 칼 노브가 이때 전통적인 캠패인과 상반된 행동합니다. 전통적인 캠패인과 교과서에는 중도 선거에 승리의 비밀 하나가 있는데, 집토끼를 지키고 산토끼를 잡아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칼 노브가 ‘공화당은 집토끼를 동원해서 선거에 나오게 하면 선거에서 이긴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집토끼를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산토끼를 잡아야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상식이었는데 칼 노브는 집토끼를 동원하는 것을 핵심적 전술로 사용합니다. 굉장한 비난에 시달렸고 민주당에서는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2000년, 2004년 모두 칼 노브가 승리합니다.

그래서 실사구시가 중요합니다. 어쩔 때는 클린턴 시대에서 교훈을 얻고 어쩔 때는 오바마 시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처럼, 정치는 구체적 현실에 대한 구체적 분석입니다. 정치학 교수들이 교과서를 어떻게 썼든 1+1=2 라고 해도 그걸 믿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정치분석가들이 항상 선거를 예측할 때 왜 지난 선거를 가지고 얘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을 가장 먼저 예측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인데 그때 제가 이 예측을 했을 때 주변에서 한국 선거는 51:49 라며 틀린 예측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정치는 언제나 새로운 현실이 창조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입각한 분석은 틀리게 되어 있습니다. 부시의 시대는 집토끼를 동원해야 이길 수 있는 선거였습니다. 반면 오바마 시대의 선거는 산토끼를 잡아야 이길 수 있는 선거였습니다. 그 시대별로 다른 것이죠. 어쩔 때는 중도가 줄어들 때가 있고 많아 질 때가 있고, 이것은 정서에 대한 구체적 분석에서 나오는 것이지 과거의 선거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듯 2000년대 초부터 칼 노브와 부시의 결합은 좋은 시너지 효과를 냈습니다. 부시가 멍청하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부시는 서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우 똑똑한 사람입니다. 부시가 9`11테러 직후 그라운드 제로에 올라가서 화재 진압하는 소방관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는데 소방관들이 잘 안 들린다고 하니까 이런 말을 했습니다. “I can hear you 나는 당신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중의법입니다. 내가 당신들의 말을 귀로 들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가슴으로 들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뛰어난 커뮤니케이션을 했던 사람이 부시입니다. 부시가 당선되기 전까지는 상당히 중도적이고 초당적이고 민주당에 협조적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는데 이때 개혁적 보수자인 존 메케인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 자신이 영웅으로 생각하는 두 사람이 있는데 링컨과 미국의 문어발식 재벌을 통제했던 시어도르 루즈벨트이었습니다. 시어도르 루즈벨트는 한국의 천박한 보수와 차원이 다른 사람입니다. 길에 널려있는 모든 꽃을 이름을 다 알 만큼 자연을 품고 있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2시간 나눠도 지루하지 않은 사람을 품고 있는 사람입니다. 생태적이고 친환경적 보수가 형용모순이 결코 아닙니다. 이러한 사람을 미국의 천박한 보수들이 제어하기 위해 부통령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부통령의 별명이 자명종일만큼 허수아비였기 때문입니다. 근데 대통령이 암살되어버리는 바람에 시어도르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되어버립니다. 그는 대통령직에 올라 처음에는 재벌들을 안심을 시켰다가 전격적으로 문어발식 재벌들을 통제해버립니다. 만약 박근혜가 뛰어난 사람이라면 아마 시어도르 루즈벨트를 집중 연구할 것입니다.

이 존 메케인이 부시와 경쟁하면서 등장하는데, 사실 미국의 민주당은 유럽사민주의정당과는 다른 금권주의에 물들어있는 부자들의 정당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존 메케인은 자신의 우상의 모습대로 공화당임에도 불구하고 금권정치타파를 외치며 민주당도 하지 못했던 정치자금개혁을 주도합니다. 그 당시 금권선거타파의 개혁을 추구하다보니 심지어 민주당이 존 메케인을 부통령으로 영입해서 민주당의 후보로 만들려는 움직임까지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민주당은 불임정당이 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이것이 남의 나라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이야 문재인 후보, 안철수 후보와 같은 경쟁력 있는 후보로 대선을 치뤘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내세울 후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는 진보의 일각에서는 DJP연대처럼 박근혜와 연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결국 2004년 부시와 존 메케인이라는 좋은 후보들의 경쟁으로 공화당은 계속 승승장구 해나갑니다. 결국 메케인은 공화당 주류들의 벽을 넘지는 못하고 부시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고 부시는 재선에 성공합니다. 이처럼 또 다시 민주당이 패배하지만 2004년 선거에서 불임정당을 벗어날 수 있는 씨앗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씨앗이 전당대회 때 대통령 후보인 캐리를 지지하는 연설에서 발견되는데 그 사람이 바로 오바마 입니다. 이 전당대회 연설은 캐리를 포함한 몇몇이 진행한 것입니다. 이미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바마는 대통령감이라는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거물 정치인들의 유력한 견제가 들어갔을 텐데 미국은 키웠습니다. 오바마를 가장 예뻐했던 사람도 힐러리였습니다. 오바마는 “이제 미국은 공화당의 미국도 아니고 민주당의 미국도 아닌 미국입니다.” 라고 하는 초당적인 연설, 당파성을 벗어나야 한다는 연설을 통해 일약 대권후보로 발돋움 하게 됩니다. 미국은 전당대회에서 그 다음 대선 후보를 등장시키는 좋은 전통이 있습니다. 인물을 키울 줄 아는 나라인 것입니다. 레이건도 그랬고 항상 그러한 패턴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 같은 경우 지난 전당대회에서 누가 연설을 했는지에 대한 무관심은 정치에 대한 시야가 짧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안철수 교수는 어떻게 보면 오바마 이미테이션의 이미지도 있고 로스페로우와 같은 이미지도 있습니다. 로스페로우라는 백만장자는 워싱턴 정치에 질려 자신이 메시아처럼 등장하면 워싱턴의 온갖 진흙탕 같은 정치를 하루아침에 쓸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개혁당의 후보가 돼서 등장하는데 엄청난 표를 얻게 됩니다. 일부 정치학자들이 로스페로우가 당선될 것이라고 많은 예측들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근데 로스페로우는 정치 경험이 없었던 CEO이고 철저히 자기중심적 인물이었던지라 쉽게 몰락하고 맙니다. 저는 안철수 교수도 비슷한 성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오바마가 등장할 때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밟는데 안철수 교수는 불행하게도 오바마와 로스페로우의 기질을 합성한 채 선거에 등장한 것입니다. 문재인 이사장님의 경우도 오바마와 같은 기질이 있으신 분입니다. 문재인 이사장님을 처음 대선출마를 결심한 직후 뵈었었는데 그때 제가 “문 이사장님은 시민정치가의 기질이 있으십니다. 여의도에 가도 40년이 지나도 시민의 시각을 잃어버리지 않는 정치가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레이건 대통령도 퇴임할 때 시민정치가라는 별명을 가지고 퇴임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도 퇴임 후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통해 시민정치가의 별명을 얻으셨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만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당파적인 분이셨는데 문재인 이사장님은 훨씬 더 덜 당파적인 분이십니다. 그런 오바마적 기질을 가지고 계시기는 했지만 대통령적 기질에는 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것이 지난 대선에서 확인된 한국정치의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2004년에 오바마가 등장할 때 오바마의 맹아로 불리 우는 사람이 또 등장합니다. 바로 하워드 딘이라고 하는 버먼트 주지사였습니다. 하워드 딘이 없었으면 오바마는 절대 대통령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워드 딘은 정의하기가 좀 어려운 사람입니다. 열렬한 총기소유 옹호론자, 즉 천박한 보수의 기질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이라크 전쟁에 대해 강력히 반대한 묘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미국판 노무현 같은 모습이 나타나는데, 딘을 사랑하는 모임이 결성됩니다. 대통령 후보 연설에서 하워드 딘이 “나는 이라크 전쟁을 반대합니다.” 라고 하며 연설을 시작합니다. 이 당시 이것은 정신 나간 짓이었습니다. 이러한 발언은 9`11이후의 미국분위기에서는 비애국적인 모습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매우 농후했습니다. 근데 캐리가 깜짝 놀랄 정도로 뒤에 앉아있던 젊은이들이 우례와 같은 박수와 함께 환성을 보내게 되고 딘풍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전국에서 젊은이들이 배낭을 메고 모여 천막을 치고 노숙을 하며 하우드 딘을 돕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오바마 현상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철수 현상이 박원순 현상으로 옮겨졌고 안철수의 재등장으로 여전히 유효한 현상임을 확인했는데 만약 다음 대선에서 안철수가 아닌 다른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한국판 하워드 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워드 딘은 기가 막힌 토대를 만들었던 것 일뿐 당시는 아직 시대가 무르익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 당시 젊은이들은 인터넷에서 와글와글하면 자연스럽게 표가 오는지 알았습니다. 우리 지난 총선 때 SNS에 사활을 걸었던 것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인터넷에서 환호를 불러일으켰지만 이내 하우드 딘은 꺾여 버립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가지 에피소드를 말씀드리면 연설 때 괴물처럼 비명을 지르는 모습에 증산층들이 거부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비록 캐리에게 패배하고 말았지만,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때 다 나왔습니다. 더 이상 선거 전문가들만의 선거가 아닌 SNS와 같은 통로를 통해서 유권자들이 얼마든지 함께 모이고 토론하고 동원될 수 있는 신천지를 발견한 선거였습니다. 포털사이트에 글을 올리고 스타벅스에서 모임을 주최하면 하우드 딘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스타벅스를 꽉 채우고 있는 모습, 지금은 일종의 상식적인 모습일지 모르지만 그때 당시에는 신천지 그 자체였습니다. 오바마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면 너무나 간단합니다. 홈페이지에 자신의 우편번호를 입력하면 자신과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마법과 같은 기제를 그 당시 처음 발견한 것입니다. 이 당시의 모습에 오바마 승리의 비밀이 다 있습니다. 근데 미국과 한국의 차이가 무엇이냐면, 미국은 모든 비밀이 다 있으면 그것을 분석해 다음 선거에서는 한 단계 진화된 것으로 나아갑니다. 왜? 실사구시의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미국은 소름끼칠 정도로 과학적 분석이 가능한 나라입니다. 클린턴 시대의 살아있는 여론조사가 마크 펜이 정치에서 한 것이 무엇이냐면 여론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수년의 데이터를 축적해서 그것에 딱 부합하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클린턴이 TV에 폭력방지칩을 장착하자고 연설을 합니다. 미디어 기관들이 당연히 비판의 수위를 높이지만, 여론조사를 해보면 지지율이 확연히 올라갑니다. 미디어 종사자 엘리트들은 강남좌파들이지 실제 중산층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TV폭력방지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마크 펜과 같은 사람은 수많은 인과관계들을 보면서 발견해내는 것입니다. 무상급식 이슈, 김상곤 교육감님은 탁월하신 분이기 때문에 발견한 것이지만, 미국은 그것을 수많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발견합니다.

일반 시민 기반의 시민정치운동이 2004년 하워드 딘 돌풍의 배경이었고 정권교체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풀뿌리 시민운동을 잃어버리고 그로부터 유리된 기업컨설턴트가 지배하는 민주당에서 무브온이 등장하게 되면서 일반 민심의 분노에 입각한 민주당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오바마는 이 무브온과 결합하게 되면서 정권교체에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근데 처음에는 초당적 분위기의 무브온을 점차 마이클 무어 감독과 같은 전투적 liberal들이 장악하게 되면서 당파적, 분노, 적개심의 분위기로 변화합니다. 한국에도 이러한 전투적 liberal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의 바로 나꼼수 김어준입니다. 제가 지난번 대선패배 이후 민주당 쪽에 메시지 센터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보수는 메시지에 정교한 사람들인데 왜 진보는 검증되지도 않은 거친 메시지들을 가지고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천안함 문제에 대해서 메시지에 대한 분석 없이 단어들을 사용한다는 것은 중산층의 감정적 문제로 보면 위험한 일입니다. 메시지 센터의 만들자는 제안에 아무도 귀를 기울지 않았고 그래서 저는 실패했는데 김어준은 성공했습니다. 나꼼수라는 메시지센터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 수많은 재생산을 야기시켰습니다. 그러나 역풍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미국에서도 전투적 liberal 들이 지나친 적개심으로 부시를 악마화 하고 부시가 하는 모든 일에 무조건적 반대로 대응하고 그래서 서민들이 느끼기에 좋은 부시의 정책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면 그 칼날은 진보를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전투적 liberal 들이 그러한 우를 범했지만, 민주당은 단호하게 거리를 두고 그것을 제어합니다. 한국도 김용민 막말사건을 통해 동일한 사건을 겪은 것입니다. 무브온이라는 것이 그런 점에서 역풍이 있었습니다.

하우드 딘이 결국 당시 대선에서 패배하면서 자신의 포지션을 잡는데 바로 당의장입니다. 자신의 대통령 꿈은 버리고 민주당을 제대로 바꾸고 정권교체를 해내겠다는 다짐에서 나온 결정입니다. 미국의 거물들이 현명하다는 것은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잘 구분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어릴 적부터 합리적 선택에 대한 훈련이 잘 되어있는 덕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우드 딘이 당의장으로서 당혁신을 주도하면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이는 민주당을 풀뿌리정당으로 바꾸기 위한 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를 위해 공화당 아성지역을 포함하여 전국에 당활동가를 파견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민주당의 거물전략가 제임스 카빌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오바마는 버지니아, 노스케롤라이나, 사우스케롤라이나 등 공화당의 아성 지역에서도 승리하는 모습을 보이며 하우드 딘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거기에다 오바마의 비서실장을 지내고 미국 선거의 귀재로 손꼽히는 람 임마뉴엘이라는 사람이 2006년 중간선거에서 2008년 오바마 승리의 토대를 만듭니다. 람 임마뉴엘이 총선하기 오래전부터 진행한 각 지역별로 보수적, 진보적 그 지역에 맞게 가장 승리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공천을 하게 됩니다. 물론 승리에 집착하며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승패만 놓고 보자면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물론 카트리나 재난으로 인해 분위기가 오바마로 넘어간 덕분도 있습니다. 그 재난 이후 2006년부터는 공화당은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을 앞지르지를 못합니다. 게다가 오바마는 힐러리의 당선을 위해 준비했던 모든 것이 오바마를 향하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center for american progress’ 라는 헤리티지에 맞선 진보의 싱크탱크이자 메시지 생산 공장, 선거자금, 인맥 등이 모두 힐러리를 위해 준비되어 있었는데 힐러리에 대한 극우들의 마녀사냥과 시민들에 의해 발생된 아래로부터 부는 바람이 이 모든 것이 오바마로 향하게 만들었고 클린턴 제국의 마케팅 대가인 마크 펜조차 이 사실을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진보와 보수의 이념이 절대적으로 나뉘어져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바마가 그렇습니다. 오바마는 그냥 작동하면 된다고 하는 초당적 사고들이 힐러리가 오바마를 이기지 못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근데 서글픈 현실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2008년 오바마 선거를 벤치마킹했다면 대선에서 패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2008년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데 미국의 짐 메시나라는 선거전략가는 “2012년 선거는 2008년 선거를 구석기시대로 보이게 할 것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혁신은 자본의 차이를 넘어서 마인드의 어마어마한 차이입니다. 한국은 빅데이터는 고사하고 시민들과 공감하고 눈을 맞추는 20세기 초반의 단계부터 훈련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지금은 또 다시 모래를 뒤집는 반복되는 느낌입니다. 민주당이라는 자유주의진영이 패배하고 안철수 교수가 돌아왔지만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레프트 진영까지 무너졌습니다. 레프트가 건강하지 않으면 자유주의진영은 절대 건강해질 수 없다는 사실은 지금 한국을 심각한 상황으로 보아야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상투적이지만 실사구시로부터 출발해야한다는 것, 구체적 데이터로부터 출발해야한다는 것을 다시 말씀드리고 싶다.

Q. 계속해서 데이터, 실사구시를 강조하시는데 조지 레이코프나 로크리지 연구소에서 하는 얘기들,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레이건을 투표하는 사람들을 보며 찬성하는 이슈에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에 따라서 투표를 이중개념주의자로 규정하고 내면의 진보프레임을 깨우기 위한 운동을 2007~2008년 진행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진보가 뺏긴 자유의 가치와 같은 진보의 프레임을 깨우는 운동을 데이터에 대한 강조와 함께 병행해야 하는 것 아닌지 여쭙고 싶습니다.

A. 저도 공감합니다. 한국에서 레이코프 책이 여의도 정치에서 유행했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이제 한국의 여의도 정치도 프레임에 관심을 갖는 과학적 정치로 가는구나.’ 하고 기뻐했습니다. 근데 여권은 모르겠지만, 야권의 경우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제가 오늘 데이터에 관한 이야기를 지나치게 강조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데이터 분석과 함께 이를 가치를 표현해내는 노력이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 레이코프에 주장은 상당히 타당합니다. 공화당은 자본을 가진 곳이라서 워슬린 같은 사람은 오래전부터 코카콜라 마켓팅에서 이를 적용했던 사람입니다. 맥도날드 광고를 보면 햄버거가 맛있다는 것보다 가족끼리의 외식, 훈훈함과 같은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하지만 야권은 이제야 다시 레이코프, 실사구시를 이야기해야만 하는 서글픈 현실인 것 같습니다. 민주당의 민주정책연구원이나 안철수 교수가 신당을 만든다면 일상적인 당원과 지지자에 대한 가치를 입각한 전달 훈련프로그램을 일상적으로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Q. 제가 총선에서 대선에서 SNS전략을 담당했었는데 한계와 동시에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조직적으로 촘촘히 조직되지 못해서 일정의 열풍이나 트렌드 수준으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선거후 이것의 효과성에 대한 의문들이 제기되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전략을 세우기보다는 후퇴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것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여쭙고 싶습니다.

A. 제 생각에는 많은 분들이 SNS를 여러 가지 홍보매체 중에 하나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바마가 2008, 2012년에 왜 탁월했냐면 SNS라는 영역을 여러 홍보매체 중 하나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하나의 영역으로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총체적 기획을 해 나아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헐리우드의 마켓팅, 대학 등 모든 영역들이 이러한 유기적 연결이 잘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한국이 취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Q. 유럽식 정당이 한국의 맥락에서 현실화되기 어렵고 한국이 유럽보다는 미국을 닮아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이 그러한지 여쭙고 싶습니다.

A. 하나는 정당의 구조가 정당 내외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시대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당같기도 하고 시민단체 같기도 하고 기업 같기도 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당원, 지지자, 소비자가 모두 필요한 것이겠지요. 이해찬 전 총리께서 총선 전에 이와 관련해서 ‘이중의 집’이라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당원이 있는 집 위에 온라인 지지자의 집이 있고 또 그 위에 보통의 시민의 집이 있는 이중 삼중의 형태여야 한다는 말씀이십니다. 당원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쉬운 출입과 이탈이 가능한 이러한 자유로운 형태가 지역주의, 분단 등과 같은 여러 특성에 의해 한국은 미국보다 더 필요합니다.

또 하나는 이념에 약화의 추세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정당의 강령과 이것에 입각한 당의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시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제에서는 진보, 안보에서는 보수와 같은 새로운 조합이 일어났을 때 흡수할 수 있는 당의 형태가 유럽식 정당의 형태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Q. 정당 혁신 작업을 하다보면 한국적인 바람직한 정당모델을 설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한국에서의 바람직한 정당모델, 그리고 바람직한 중앙당의 역할을 미국의 경험에 비춰서 여쭙고 싶고, 오바마 같은 경우 보수-진보라는 진영논리를 뛰어넘은 시대전환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지난 주 강연에서는 클린턴의 한계를 뛰어 넘어 민주당의 혼과 가치를 구현한 특성을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영논리를 뛰어넘어 당의 혼과 가치를 구현한 방식은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A. 결국 한국정당도 유권자 정당, 지지자 정당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온라인, 오프라인의 당원을 다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지나치게 선거 때에만 떳다방과 유사한 정당이 된 단점이 있어 꼭 벤치마킹만 해야 할 곳이라는 말씀을 드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바마가 무브온에 기반해서 당선되었음에도 이에 반기를 드는 모습을 보이는데요. 그래서 2012년에는 그에 대한 반성이 있었고요. 저희도 그러한 점에서 광범위한 시민정치운동의 힘을 당내에 일상적인 풀뿌리 활동이나 당활동에 잘 포함시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의원중심의 정당이 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뛰어 넘는 풀뿌리의 일상적 활동과 결합된 정당이면서도 지지자들의 정당, 각 지역별 다양한 분권화된 혁신간의 경쟁이 가능한 정당, 집단 지성 간에 다양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반영되는 정당으로의 설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초당적이면서도 당파적인 것, 굉장히 어려운 것인데요. 무상급식 같은 것이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민주당의 진영논리가 아닌 초당적인 것이면서 또한 당시 민주당의 당파적 이익을 대변한 것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슈를 일반 시민들이 좀 더 잘살고 싶어 하는 욕구에 초점을 맞춘다면 초당적인 태도와 진보적인 태도의 균형을 잘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당이라는 형태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것을 보면 정당의 유통기간, 한계효용이 끝난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른 방식을 요구하고 있는 것 아닌가 여쭙고 싶고, 미국의 양대정당 문제가 확고한데 미국과 닮아있다는 선생님의 주장에서 우리의 경우 제3당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A.한국의 양당은 그다지 안정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박근혜 정권이 위기 봉착하게 되면 심각한 상태로 빠져버릴 것이고, 민주당 역시 그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안철수진영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고 노회찬, 심상정과 같은 liberal left들도 연대해야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제3당이 위력적일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하지만 저는 멀리 보면 양당제의 성향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진보의 내일을 찾아서] 진보의 성찰3 ‘미국민주당의 혁신은 어떻게 가능했나1(안병진) -강연 다시보기-

미국민주당의 혁신은 어떻게 가능했나 1

80~90년대 민주당 혁신의 명암

 

안병진 (경희사이버대학교 미국학 교수)

오늘부터 2회에 걸쳐 미국의 민주당입니다. 경희사이버대 미국학 교수이신 안병진 선생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이 강의는 사실 저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강의입니다. 저는 소박하지만 민주화 운동에 참여를 했었고 그 뒤에 유학을 간 곳이 ‘공적 지식인이 미국을 비판적이고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야 한다’는 기조로 설립된 미국의 좌파 대학인 ‘존뒤’ 였습니다. 그곳에서의 배움을 통해서 한국정치, 미국정치에 대한 공적 지식인으로서 활동을 하고 싶고 대학교수라는 직함보다는 공정 지식인이라는 직함으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한국정치나 미국정치에 대한 여러 문제제기를 던졌었는데요. 제가 민주화운동 시절에 너무나도 많은 오류를 범하면서도 끝까지 평생 간직해야할 화두로서 저는 실사구시를 삼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귀절 중에 하나인데요. 레닌이 파우스트를 즐겨 인용하면서 했던 얘기입니다. “이론이라는 것은 잿빛, 회색빛이다. 오직 푸르른 것은 현실.” 실사구시 정신을 잃어버리지 말아야겠다는 것이 저의 모토인데, 한국에서 와서 보니까 실사구시에 대한 정신이 강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실사구시를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이유는 오늘 우리가 할 이야기가 ‘미국정치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인데요. 지금의 강의 자체가 약간 기묘한, 이상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DLC(Democratic Leadership council)이라고 하는 클린턴과 엘 고어 등의 걸출한 정치인을 양산시킨 중도적 싱크탱크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강의를 부탁하십니다. 그게 저에게 굉장히 이상합니다. 그 이유는 과거 노무현 정부 초기에도 이런 강의부탁을 많이 받았는데, 그때 DLC는 여의도 정치권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했던 이야기였고, 한국도 이제 구진보가 아닌 새로운 진보, 시장 친화적이고 글로벌한 시야에 밝은 그러한 진보로부터 배워야한다는 것이 상식처럼 이야기되었습니다. 이처럼 이에 대한 논의는 오래된 것입니다. 오바마 관련도 강연도 많이 했었지만 이 역시도 기묘합니다. 이렇게 과거에 논의되었던 내용들, 클린턴과 엘 고어의 DLC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 대해 백지부터 다시 생각하고 있고, 오바마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 강연이 기묘하고 이상하고 또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그런 점에서 모래시계라는 드라마에서 모래시계를 뒤집으며 역사라는 것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된다고 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지금 미국 DLC를 이야기 할 때가 아니고, 오바마 성공의 교훈을 이야기 할 때가 아닌 더 많은 것을 이뤘어야 하는 때인데 왜 이러한 과거 다른 성공에 대한 경험을 다시 이야기해야 되는지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상황들이 지금 한국의 현실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난 총선, 대선을 보면서 저는 87년의 느낌, 아마추어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과거 87년에 야당에 비해서 민정당 쪽은 놀라운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선거 결과를 거의 예측하고 있었고, 미국의 세계적인 컨설턴트를 통해 선거를 컨설팅 함으로써, ‘보통 사람’ 이라는 미국 캠페인에서 흔히 등장하는 포장을 해낸 반면에 야권의 수준은 상당히 낮았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 진영에서 보여줬던 것은 87년도와 상당히 유사했던 반면에, 과연 야권은 어떤 것이 진보했는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배우는 것도 중요한데, 그 전에 던져할 질문은 우리는 왜 미국의 DLC와 같은 경험을 수없이 벤치마킹 하면서도 성공하지 못했을까?, 그들의 성공은 진짜 성공일까 아니면 또 다른 어두운 그림자일까?, 우리나라의 안철수와 문재인 후보는 오바마가 되지 못했을까?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외국으로부터 잘 배워야 할뿐만 아니라, 어쩌면 외국으로부터 배울게 아니라 한국에도 좋은 사례들이 있는데 놓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민주당이 저에게 오바마 강의를 요청했을 때 약간은 도전적인 언어로 미국부터 배우지 말고 오바마가 초등학교 때부터 성장해온 과정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오바마가 가진 지적, 인문학적 깊이는 대단합니다. 한국의 대통령 후보들은 1분에 자신의 비전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하질 못합니다. 이것은 사실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미국 정치와 한국 정치의 분명한 차이입니다. 따라서 이를 무조건 벤치마킹할 것이 아니라 광우병 촛불시위때 나눔문화라는 단체가 촛불소녀라는 아이콘을 탄생시킬 수 있었는지, 그것이 새로운 시대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등을 보는 것이 중요한 합니다. 외국을 벤치마킹 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어떻게 성공했는가’ 가 아닌 ‘우리는 왜 실패하는가’에 대한 정교한 분석, 판단을 실시하고 그것을 통해 준비가 필요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미국의 교훈을 얻으려고 할 때 실사구시적 자세에서 출발해야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배웠던 은사들의 프레임을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한국이 미국적 민주주의로 가야 할 것이냐, 유럽적 민주주의로 가야 할 것이냐 라고 하는 논쟁에서 유럽적 민주주의로 가야한다는 최장집 교수님의 논의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 최장집 교수님을 비롯한 여타의 분들이 주장하는 유럽적 민주주의로 가야한다거나 가고 싶다는 당위, 자신들이 유학시절에 교과서로 배웠던 지식으로 출발해 한국사회를 재단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하는 의문이 듭니다. 예전에 유시민 전 장관이 유럽식 기간정당, 카드르정당을 추구한 적이 있는데 실패했습니다. 본인들이 과거 운동권 시절, 유학시절에 규범적으로 추구했던 것에 기반하면 실패합니다. 현재 한국사회가 어떻게 가고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추세 속에서 외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들 때문에 미국의 경험을 배울 때 과거 20세기의 교과서에 기반 할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만드는 집단지성의 힘을 이해하고 이것을 정당과 정치에 반영하면서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최근에 제가 시민정치운동의 중립성테제의 시대는 지났으며 시민정치운동을 본격적으로 진행해야 하고 미국의 무브온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강준만 교수님께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강준만 교수님께서는 미국의 무브온을 한국에 이식하려고 하는 시도는 굉장히 위험하고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시도라고 말씀하십니다. 안병진 교수가 무조건 미국의 무브온식 정치를 찬양한 것이 아니고 미국의 무브온식 정치가 부정적인 당파적 정치를 지적한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그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쉽게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나꼼수를 비롯한 어떤 시민정치운동은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시민에 기반한 시민정치운동 자체가 잘못된 것일까’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주에 본격적으로 다루도록 하고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클린턴 시대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입니다.

그 교훈을 얻을 때 긴 호흡 속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을 계절로 비유한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 즉, 긴 역사의 큰 순환 속에서 어떤 특정한 정치질서를 바라보아야 길게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이해찬 전 총리께 무브온 실험을 하자고 제안하면서 뵌 적이 있었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께서 이명박 정권에게 선거에 패하고 미국을 방문하셨는데, 그때 충격을 받으셨다고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선거에서 이기고 지고 것이 전부가 아니다. 공화당이 선거에서 지는 것보다 자신의 가치와 원칙을 유지하면서 긴 호흡 속에서 정당을 유지해 나아가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선거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거에서 지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긴 호흡과 시야를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어느 때에는 져야하는 선거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의미 있게 져야하는 선거가 있고 타협을 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긴 호흡 속에서 매 시기 정치정세를 보면 이러한 정치정세가 읽혀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DJP연대, 저는 그때 극명히 반대를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정치의 진화에 필요한 것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DJP연대라는 것은 한국정치의 긴 지그재그 발전 속에서 불가피했던 타협이었을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떤 선거는 그와 달리 의미 있게 장렬히 패배하는 그런 것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매 시기 선거에 사생결단을 겁니다. 그것은 현실인데요. 우리나라는 선거에서 지면 변호사, 교수들이 아닌 경우에는 우아하게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미국, 유럽으로부터 배워야할 가장 중요한 지점은 긴 호흡 속에 매시기 선거를 볼 수 있는 시대의 결에 대한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먹히지 않는 예기를 10년째 하고 있는 이야기 중 하나가 베리골드워터라는 공화당의 걸출한 거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베리골드워터는 대통령이 되지는 못했지만 보수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보수의 거장입니다. 제가 문국현 회장님에 선거에 나오려고 고민할 때 프리젠테이션을 요청받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회장님, 이번 선거는 당신이 패배해야하는 선거입니다. 이번 선거는 당신의 컨셉을 바꾸는 선거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베리골드워터는 선거 막바지에 정치자금이 예를 들어 3만불이 남았을 때 비서가 “마지막 정치광고를 어느 주에 쏟을까요?” 라는 질문에 베리골드워터는 “존슨이라는 걸출한 후보에게 패배할게 분명한데 왜 돈을 다 써야하는가. 아껴놓았다가 이후 보수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쓰자.”라고 답합니다. 이게 듣기는 쉬운데 선거를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결국 베리골드워터는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보수의 정치세력화에는 성공합니다. 그러면서 닉슨, 레이건과 같은 사람이 베리골드워터라는 사람이 만들어놓은 토대를 통해 대통령이 됩니다. 비록 역사는 대통령이 된 사람만 기억할 뿐이지만 역사의 뒤에 숨어있는 주인공들이 분명이 있습니다. 오바마 역시도 하워드 딘이라는 사람이 없었으면 절대 승리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정교한 분업화는 미국이 긴 호흡 속에서 성공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긴 호흡에 대한 시야로 매 시기 정치정세를 분석할 수 있을 때만이 비로소 정치세력은 미래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노무현정권이 들어섰을 때, 많은 시민운동가들은 이제 운동적 기반을 크게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을지 모르겠습니다. 청와대 수석과 대학서클 선후배, 형, 아우로 다 통하는 사이에 전화한통화면 해결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시민운동은 거리에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화로 해결해 나아가게 되고, 이러면 운동의 에너지는 점차 낮아질 수밖에 없게 되며 따라서 정부가 뿌리내린 기반 역시 활력을 잃어버리는 것이지요. 이처럼 모든 정치체제는 그러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보는 사람은 노무현 정부 초기에 성공하는 것 같아보여도 그런 흐름을 보면서 전략을 구사하고 운동의 자원을 투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긴 호흡 속에서 정치를 바라봐야 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단기적인 정세, 벤치마킹에 국한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상급식 이슈와도 연결됩니다. 이 이슈가 제기됐을 때 이것이 좌파의 시대가 온 것이냐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긴 호흡 속에서 역사를 바라보면 어떤 담론이 생겼을 때는 지금 시대의 지형은 어떻고, 이 담론은 어떤 위상을 가진 담론이고, 그랬을 때 어떤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나오게 됩니다. 이 당시 김상곤 교육감이 무상급식을 제기했을 때 민주당 몇 몇 의원들이 굉장히 겁을 내셨습니다. 그때 제가 강연에서 어떤 말씀을 드렸냐면 “목숨을 걸고 이거 하십시오. 왜냐하면 무상급식은 좌파의 아젠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사회민주주의시대가 왔다는 시대의 결에 대한 오판을 하게 되고 중산층이 왜 무상급식에 대해 지지를 하게 되는지 면밀한 분석을 하지 못한 채 오바하게 됩니다.

클린턴 시대를 이해하려면 이것 역시 역사의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따라서 민주당의 르네상스, 전성기 시대라고 하는 뉴딜에서부터 시대를 바라봐야 하는 것이지요. 흔히 뉴딜민주당이라고 하면 진보적 성향을 가진 분들은 위대했던 시대로만 기억합니다. 뉴딜은 그 이상으로 위대합니다. 트로이츠키가 전 세계의 영구적 혁명을 이야기 했을 때 왜 미국이 소련에게 먹히지 않았는지 그 비밀은 루즈벨트에게 있습니다. 트로이츠키가 이야기한 영구혁명을 누구보다 잘 적용한 나라가 미국입니다. 미국에는 영구혁명 대신에 바로 영구혁신이 있었습니다. 안철수 교수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미국을 만만하게 보지 말라는 것인데, 미국이 신자유주적인 나라이고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국가의 역할이 어마어마하며 국가와 자본이 합작해서 만들어내는 혁신의 동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흔히 뉴딜을 테네시 강 유역 개발 토건사업 정도로 이해하는데, 뉴딜이 어떤 것이냐면 노동자, 농민, 자본가와 같은 사람들이 역동적인 균형을 이루면서 소비에트 체제가 할 수 없었던 정치, 경제시스템을 혁신해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정치를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바라봐야한다고 말씀 드렸듯이, 진보주의자들은 이것만 보고 뉴딜 민주당 시대의 부작용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뉴딜 민주당은 큰 부작용을 양산하는데 잘 나갈 때는 굉장히 역동적이었지만 노동자, 농민 등 다양한 이익집단들에 기반하게 되면 이 이익집단들이 점차 관료화됩니다. 마치 노무현정권이 들어섰을 때 시민운동가들이 쉽게 전화한통화로 해결해나갔던 것처럼 대의에 충만해서 미국을 잘 바꿔야 한다는, 소련에게 적화통일 되지 않기 위해 긴장을 유지할 때는 잘 나갔지만, 점차 시대가 안정화되면서부터는 다양한 이익집단들에게 파이를 나눠 줘야하는 유착관계가 형성되게 됩니다. 자기 세력들에게 떡고물을 지속적으로 나눠 줘야하고 자리를 만들어줘야 하는 이러한 관계, 쉽게 말해서 시니컬한 표현으로 이익집단 liberalism이 형성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부정적 상황에서 미국의 진보들은 새로운 형태의 진보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익집단에 근거한 liberalism이 아닌 새로운 liberalism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또 하나는 한국과 관계있는 이야기입니다. 노무현정권이 정치개혁에 어느 정도 성공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경제, 복지로 넘어가게 되고 이를 넘어서 탈물질적 가치-광우병, 환경, 생태 등-까지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요. 미국도 뉴딜시대를 통해 경제적 만족을 획득하면서 점차 탈물질적 가치에 유권자들과 정치세력층이 생기기 시작하게 되는데 이것이 야권의 분열을 가져오는 하나의 신호가 됩니다. 이러한 새로운 탈물질주의적 가치의 문화적 좌파는 기존 중산층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현재의 대한민국은 미국의 70년대와 매우 닮아있습니다. 나꼼수 멤버들 같은 경우 보헤미안적인 모습들이 그러한 전형인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70년대에서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보수의 걸출한 리더인 베리골드워터는 이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도덕적 쇠태에 대해서 쟁점화를 시킵니다. 김용민 막말사건을 쟁점화했던 것과 똑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68년 미국 민주당은 민권운동의 지도자인 마틴루터킹, 저소득층을 돌보며 진보의 아이콘이 되었던 바비 케네디라는 두 거인이 피살되는 사건과 공화당이 루져라는 별명을 가진 닉슨을 후보로 내세우는 등 절대 질 수 없는 선거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 선거가 배워야할 교훈이 당시 미국 68년 선거에 다 담겨있습니다. 미국의 민주당은 트루만, 케네디, 루즈벨트의 정당이었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나의 살림살이를 더 낫게 해주는 정당, 이를 넘어 아메리칸 드림의 정당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미지의 정당에서 68년 이후로 나왔던 후보들은 신좌파 같은 이미지를 가진 후보들이었습니다. 먼데일, 듀카키스 등 후보들이 그러했고, 92년 클린턴에 가서야 살림살이를 낫게 할 것 같은 후보로 변화하게 되면서 집권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현재 우리 야권의 정당들이 케네디와 트루만의 정당인지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급진적 운동분파에 있었는데 김대중 대통령께서 취임식 연설에서 IMF로 인한 실업자 말씀을 하시면서 목이 메이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트루만, 루즈벨트가 그러한 이미지였는데 68년부터 민주당의 이미지가 사회정의와 평화라는 이미지로 변화합니다. 물론 좋은 가치를 담고 있지만 정의가 자신의 살림살이를 낫게 해주지는 않는다는 이해로 대중들에게 멀어집니다. 그 당시 시대정신을 잘 대변하는 것이 강남좌파라는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전의 미국의 민주당의 루즈벨트, 케네디 모두 백만장자였으나 서민을 위하는 정치인으로 이미지를 가졌었고, 68년 이후의 민주당은 특권계급, 엘리트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어버렸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도 못해 봤으면서 살림살이 생각은 안하고 낙태, 동성애 같은 것들만 이야기하는 고상한 정당이 되어버립니다. 그러한 때에 기가 막히게 파고 들 수 있는 논리가 강남좌파론입니다.

그 당시 닉슨과 케네디는 굉장히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엄친아의 전형인 케네디에 비교해서 닉슨은 백인 노동자의 아들이었고 따라서 닉슨은 평생에 걸쳐서 케네디에 대한 열등감을 씻지 못했습니다. 백악관에서 자연스러운 회의를 해도 그러한 열등감들이 들어나는데 그러한 차이가 중산층들의 정서였습니다. 이것이 그 패할 수 없던 선거 상황에서 사람들은 서민으로서 공감대가 형성되는 닉슨을 선택하게 된 이유였고 중산층, 노동자의 정당에서 liberal, elite 정당으로 변모한 민주당은 패배하게 되며 이후로 이러한 모습을 92년까지 보여줍니다. 과거 태양과 같은 존재로서 민주당, 달의 존재로서 공화당으로 비유되던 것이 68년도부터 역전되기 시작해서 미국판 박근혜라고 할 수 있는 닉슨이 선거에 탁월한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닉슨은 자신의 극우적 이미지를 합리적 보수이미지로 바꿨고 복지에 대한 담론을 선취합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김종인 전 총리를 불러오고, 위스콘신 학파 동원을 통해서 규제자본주의를 통한 복지시대 담론을 퍼뜨렸을 때 패배를 예감했습니다. 제가 2001년부터 박근혜시대가 온다고 이야기했을 때 여러 비판을 받았지만 박근혜시대는 결국 왔습니다. 박근혜와 닉슨은 무시할 수 없는 뛰어난 사람입니다. 닉슨이라는 사람은 집권해서 민주당보다 더 나아간 복지를 시도했습니다. 진보의 상징이었던 에드워드 케네디가 죽기 전에 고백을 하는데 닉슨이 미워서 의료보험개혁에 대해 지지를 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오바마가 주장하는 의료보험개혁은 원래 공화당에서 내놓았던 안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박근혜가 닉슨의 2/3만 할 수 있다면 다음 대선에서 야권은 집권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 당시 선거캠패인 역시 이번 한국선거와 매우 유사했습니다. 문재인 후보께서 훌륭하신 분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안타깝게도 문재인 후보를 사람들이 노무현 2.0으로 인식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건 문재인 후보의 한계이도 하고 민주당의 한계이기도 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야권의 한계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봉화에 내려가셔서 가장 고민했던 것이 민주주의 사이트 2.0 이었습니다. 아마 민주주의 사이트 2.0과 청와대 국정운영시스템인 이지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 노 전 대통령께서 살아계셨다면 노무현 2.0에 대한 많은 고민이 진척됐을지 모르겠습니다. 노무현 2.0이 되지 못했던 문재인 후보는 68년 닉슨과 붙었던 주류 후보 중 하나였던 험프리와 오버랩됩니다. 험프리라는 사람은 노동이라는 화두를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진보적인 모습이었지만 이 사람의 한계는 존슨정부의 부통령이었다는 것과 그와 밀약을 맺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존슨은 사람을 개별로 만나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탁월한 모사가였고, 미국의회정치 역사상 가장 탁월하게 의회정치를 구사했던 사람이고 이러한 사람은 앞으로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존슨은 험프리에게 대통령 후보로 비토하지 않는 대신 전쟁을 반대하지 말아달라는 거래를 요구하고 서로 밀약을 맺게 되면서 스탠스가 꼬이게 됩니다. 또 안철수 후보와 매우 닮아있었던 사람이 유진 메카시라는 중도적 진보 후보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특기는 사람들이 캠폐인에서 분노와 열정이 달아오르려고 할 때 앞서서 캠폐인의 열기를 진화시키는 것으로서 백년서생 스타일이었습니다. 결국 68년 선거는 야권 후보들의 한계, 닉슨의 중산층에 기반한 캠폐인, 복지담론 장악 등으로 결정된 것입니다. 당시 험프리가 지명이 될 때 밀실해서 담합으로 결정되었는데 신좌파들이 이에 분노하고 시카고 전당대회에서 소요를 일으키고 ‘맥거번 프레이져 커미션’이라는 정당개혁을 시작합니다. 현재 민주당의 정치혁신위원회에서 정해구 교수님이 하시고 있는 역할처럼 맥거번이 정치혁신위원장을 맡게 되는데 그로 인해 신좌파 세력에 당내 영향력을 부여하게 됩니다. 68년에 서민의 정당의 이미지를 잃어가는 와중에 신좌파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70년대에는 완전히 참패하게 되고 닉슨은 재선에서도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 민주당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과 다른 점이 있는데 우리는 어마어마한 위기가 있어야 변화와 혁신이 일어나는데 미국은 이 정도의 충격에도 어마어마한 변화의 물결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대전환의 선거를 겪지 않고도 새로운 정치세력이 욱일승천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한국과의 차이입니다. 제가 4~5년 전부터 민주당 강연에서 위기라는 이야기를 계속 해왔는데 2년 전에 민주당 관계자들이 저에게 제발 위기라는 말을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상황이 어떻습니까? 여전히 위기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2등 브랜드가 1등 브랜드를 어떻게 이기는지 아십니까?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를 이기는 방법, 바로 혁명적 수준으로 자신을 바꿀 때 가능한 것입니다. “제발 이렇게 까지 바꾸지 마세요.” 라고 말릴 정도가 되면 2등 브랜드가 1등 브랜드를 잡아먹습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그렇게 바꿨고 박근혜 대통령이 천막당사에서 그렇게 바꿨습니다. 이에 대한 흔히 드는 예가 있는데요. 미국의 2등 브랜드가 CEO가 자기네 회사를 폭파하고 잔해로 들어가는 광고를 방영하는데, 이 정도는 되어야 경영학을 이해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일상적인 정치과정 속에서도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나라, 그 이유는 우리 보다 훨씬 긴 호흡 속에서 문제를 보고 실사구시적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당파성 이념이 아닌 데이터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선구자들이 엘 고어, 클린턴, 부루스 리드 등 입니다. 처음에 한국에서 이들은 진보의 이념을 버렸다며 비난을 받습니다. 물론 미국의 자본의 힘에 영합한 면이 있지만 어떻게든지 미국이 우경화되어 가는 추세속에서 진보로서 적응해가려고 하는 노력들은 어느 정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장이 가지는 역동성이 있는데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사람들에게는 명과 암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무브온 이야기를 할 때 전제를 둔 것이 있었는데 ‘무브온의 출발은 초당적이다.’ 라는 것이고 당파적 이념적 운동으로 가면 실패한다는 것이지요. 이때 이 미국의 새로운 선구자들은 당의 외부 운동가가 아닌 의원중심의 정당을 고민합니다. 물론 명암이 존재하는데 유럽적 정당이 가진 진보의 힘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원중심의 정당을 고민하면서 슈퍼대의원제를 통해서 외부 운동가의 영향력을 제어하기 시작합니다. 주지사, 전직 대통령, 전직 부통령 등과 같은 사람들로 당의 당연직 대의원들을 확대하면서 이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당의 외부세력인 신좌파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80년에 레인건에게 패배하고 84년에 또 패배합니다. 거의 불임정당의 시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당시 제시 젝슨이라는 마틴루터킹과 함께 활동했던 한국의 김근태 의원님과 같은 존경할만한 운동가가 있었는데 이와 같은 전통적인 진보세력은 불임정당화속에서 새로운 진보를 추구하는 세력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이들은 DLC를 Democratic for Leisure Class(유한계급의 정당)이라고 조롱하기 시작합니다. 이 진영 돈이 많고 친자본적이고 남부의 인종주의적 성향이 있고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누구보다 빨리 받아들인 세력이었기 때문입니다. 공격을 많이 받았지만 한 가지 분명했던 것은 민주당을 중산층들의 건전한 상식에 기초한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만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 점에서 한국에도 시사점이 있는데, 스탠리 그랜버그라고 하는 미국의 걸출한 여론조사가는 백인노동자층의 정서를 알아보기 위해서 미시간주의 매콤 카운티를 샘플로 집중적으로 조사를 합니다. 여기서 나온 보고서를 보게 되면 미국 민주당이 왜 불임정당이 되었는지에 대한 모든 답이 나옵니다. 아마 이 보고서를 보게 되면 이번 선거에서의 패배에 대한 많은 시사점들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유권자들의 표시인 레이건 민주당, 민주당은 민주당인데 레이건을 좋아하는 민주당이라는 유명한 표현이 스탠리 그린버그의 조사에 나옵니다. 아마 이번 선거에서도 50, 60대 층에서 이런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대목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근혜 같은 경우가 대중적 보수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왜 선거의 신이냐면 박근혜가 지나가면 그 지역에 지지율이 출렁거립니다.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쓰고 눈물을 흘리며 박근혜 연설을 듣습니다. 이것은 문화적 현상이고 심리적 현상입니다. 미국의 레이건 데모크렛 같은 경우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88년도에 민주당은 또 패배합니다. 엘 고어라는 탁월한 정책가로서의 후보가 있었는데 인터넷 발명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러브스토리의 진짜 주인공이라는 사실 자체에 대해 조롱거리가 되고 대통령이 되지 못합니다. 잘난체하는 liberal 엘리트로서 서민적 감각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제시 젝슨이라는 진보운동가에게 패배하는데 만약 그 당시 뉴미디어, 소셜미디어가 있었다면 상황이 다를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미국 전역에 각 주마다 DCL라는 새로운 진보를 꿈꾸는 사람들의 공간을 만들기 시작하고 알칸소라는 시골 주지사이지만 굉장히 신선한 시각과 대중적 카리스마와 정치에 대한 강렬한 권력의지를 가지고 있던 클린턴을 찾아갑니다. 클린턴의 권력의지는 대단했습니다.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김영삼 전 대통령 수준입니다. 클린턴은 자신의 대학시절 때 내각구성까지 완료했을 정도로 권력의지가 강했습니다. 밤마다 집에 오면 자신이 오늘 만났던 사람들의 데이터베이스까지 정리했습니다. 클린턴은 어쩌면 나폴레옹과 비견할만합니다. 나폴레옹이 10년 전 방문했던 항구의 조수간만의 차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는 일화들이 있는데 클린턴은 걸어 다니는 정치 사전이었습니다. 78년 알칸소의 선거결과가 민주당이 몇 프로를 얻었고, 72년에는 몇 프로, 쭉 얘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권력의욕이 없는 사람이 정치를 한다는 것은 모두가 몰락하는 길입니다. 클린턴은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봤고, 가정폭력 속에서 살았고, 그래서 서민의 대통령이 정말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집권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30년 동안 생각했다면 TV토론회에 나와서 준비한 자료가 없다고 헤맬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클린턴과의 결합은 환상적이었습니다. 엘 고어, 클린턴, 힐러리는 이념적 성향을 떠나서 이런 사람들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불세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거기에 전통적 liberal 집단 중에서 제시 젝슨이 훌륭하지만 낡은 것 아닌가하는 불안해하는 사람들, 비유하자면 문재인 후보의 정책과 살아온 역사는 안철수 후보와 비교할 수 없지만 안철수 후보가 이야기 하는 네트워크, 새로운 대기업에 대한 마인드가 어필 하는 것에 끌렸던 사람들, 미국도 그런 사람들이 결합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국적 망을 만들고 싱크탱크를 만들어 냅니다. 한국 민주당의 민주정책연구원은 아무리 뛰어난 분이 원장을 한다 하더라도 정치의 외압으로부터 자유롭기가 어렵기 때문에 한계를 가집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선거결과와 상관없이 10년 후를 보면서 연구원을 운영하라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뿐더러 이는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DLC라는 곳에서 했던 싱크탱크는 당으로부터 독립이 되어 있고 충분한 펀드에 기반이 되어 있었습니다. 박원순 시장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는 것은 저도 알지만 한 가지 정말 배워야 할 것은 예외적인 서구적 리더라는 것입니다. 박원순 시장이 수년전부터 했던 “프롤레타리아적인 금욕과 윤리의식을 가지고 살아야하는가, 우리도 미국처럼 돈 많이 주고 젊은 세대들이 자긍심을 가지며 일하면 안 되는가” 라는 이야기는 과거 민주화운동의 패러다임에서 시작한 새로운 시도들의 실패에 분명한 교훈을 줍니다. 경제에서 김광수 연구소 같은 경우에 성공한 케이스지만 정치에서는 성공한 케이스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저희 같은 진보교수 쪽에도 후속 세대들이 만들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후속 세대는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당과 혁신과통합이 통합할 때 제가 강조했던 것이 연수원부터 세계적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 연수센터를 통해서 당관료들을 포함해서 모두 평가하며 구글시스템에 기반에서 혁신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개개인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현재 정당의 구조와 방식이 그렇습니다. 미국이 1000억을 동원할 수 있다면 우리는 100억도 동원하기 힘든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00억으로도 충분한 가능성들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긴 호흡 속에서 민주정책연구원나 싱크탱크 같은 곳들이 어마어마한 기반의 미국의 경험을 불가능한 꿈이라고 여길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DLC에 나온 저널들을 보면 놀랄 정도로 탄탄합니다. 그 반면에 한국은 한꺼번에 거대한 실험을 하는 나라입니다. 예를 들면 노무현 정부가 클린턴 정부로부터 도입했던 EITC(근로자소득공제)의 실행을 들 수 있는데요. 미국은 수년의 걸친 실험과 사례연구,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또 실험하는 반복을 거쳐서 실시하게 되는데 반해 우리는 책 한두권으로 정책을 실행해 버립니다. 한국의 모든 미시사회가 일부 영역을 제외하고 다 그렇게 돌아갑니다. 지금 한국의 일부영역에서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미시적인 디테일의 축적의 것으로 이미 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분당에 NHN 사옥을 만든 조수영 건축가는 심지어 직원들의 양치하는 공간에 대한 결정을 세밀한 조사를 통해 결정하고 배치합니다. 지금 앞으로 야권은 길게 봐야 합니다. 다음 선거도 박원순 시장같은 후보가 있더라도 녹록하지 않습니다. 대선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질 수도 있습니다. 긴호흡을 가지고 하나 하나 단단하게 만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어마어마한 빅프로젝트 안거드리고 미시적인 것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안희정 도지사의 경우에도 어마어마한 학습을 통해 2년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버렸습니다. 제가 운동을 하면서 누군가와의 토론에서 만큼은 너무도 자신있어했고 그래서 굉장히 오만했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미국정치를 배우기 위해서 미국 시의원선거에 존 루라고 하는 후보를 돕는 일을 했습니다. 제가 전국적 조직도 만드는 일을 했던 사람이었으니 가르치는 마음으로 존 루의 미디어 코디네이터를 담당했는데, 토론 15분만에 꼬리 내렸습니다. 시의원 후보 조차도 어마어마한 내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전환기에서 배워야할 핵심이 바로 DLC입니다.

물론 클린턴의 DLC는 문제가 많기 하지만, 최소한 진보가 시장을 싫어하는 진보는 아니다는 점에서 성공한 것이고, 글로벌한 것을 무조건 부정하지 않고 수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서 성공한 것입니다. 애국이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접근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시조에 대한 존경과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갖는 진보와 같은 새로운 liberal 가치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중산층과 건전한 상식의 기초, 실사구시, 부단하게 진보의 가치를 성찰하고 혁신과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은 클린턴에게 긍정적으로 배워야할 교훈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진화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습니다. 점차 친자본화 되면서 운동적 에너지와 가치를 잃어버리게 되고 서민적 어필을 잃어버리게 되고 풀뿌리 운동의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여기에서 오바마가 등장하게 됩니다. 클린턴시대의 어둠과 오바마의 등장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Q. 사실 민주당의 온지 1년 넘은 상태에서 놀랍고도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많았는데 첫 번째가 왜 이 당은 당원교육을 하지 않는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께 여쭤봤었는데 3개월이 멀다하고 지도부가 바뀌는데 무슨 교육을 진행하겠냐는 답을 주셨습니다. 두 번째는 민주당원이 총 210만당원인데 그 중에 2007년부터 지금까지 3번 이상 당비를 낸 사람을 권리당원으로 인정하고 투표권을 주는 것에 대한 논쟁이 있었는데요. 근데 그 숫자가 18만밖에 되지 않고 매달 당비를 내는 사람은 거기에서 1/3로 줄어든다고 합니다. 이처럼 민주당이 매번 말을 바꾸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당원에 기반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는 힘들겠지만 리더에 의해서 이끌어져가는 당이 아닌 가치, 노선, 철학을 공유하는 진성당원들을 육성하고 그들로부터 리더가 인정받으며 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에서 유럽형 정당이 어렵다고 말씀 하시는 건지 여쭈고 싶습니다.

A. 당원에 기반한 정당이 안 된다고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한국은 슬프게도 유럽보다 미국에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역동적이고 유럽처럼 계급적 기반이 안정화 되어 있기 보다는 노동의 힘이 갈수록 약화되고, 엘리트들은 시민들을 이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시민들이 훨씬 뛰어난, 시민들의 광범위한 힘이 정치를 부단히 움직이는 추동력인 것. 전 세계적 추세도 시민들의 집단지성에 대한 어마어마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을 때, 당원은 충실히 기반 하되 또한 유동적으로 비당원의 길을 열어놓는 것이 한국 상황에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의 상황에서 노조에 기반한 노동당 같은 모델이 20세기에는 타당할지 모르겠는데, 레디컬한 정당이라면 모르겠지만,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라면 조금 더 유동적인 시민들에 기반 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심지어 진보정당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해적당 같을 것을 생각할 때 진보적인 정당의 모델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녹색당 같은 흐름은 주목해야 할 흐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억해 보시면 박원순 시장과 민주당의 경선이 당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모바일 만능주의정당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하구요. 당원교육도 진보의 중요한 가치가 협업, 연대아닙니까? 저희의 시대가 왔거든요. 연대의 시대가 왔습니다. 탈자본주의를 고민하는 연대에 시대가 왔는데 슬프게도 한국에서 협력을 가장 잘 교육하고 훈련하는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조선일보 우병현 이사라고 얼마 전 ‘구글을 잘 쓰는 직장인’ 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조선일보의 자회에서에 우병현 이사가 그 회사의 직원들과 함께 1년간 구글이라는 플렛폼에 기반해서 어떻게 하면 협업을 잘 할 것인가를 테스트하고 그 결과를 일원화 했습니다. 구글, 애플이 왜 뛰어난지를 알아야 하는데 이유는 레디컬을 자본주의에 접목했기 때문입니다. 삼성이 아직까지 애플을 뛰어넘지 못하는 이유는 운동권이 없어서입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새로운 상상력은 코뮤니즘에서 나옵니다. 구글의 주요한 활동가들을 보면 좌파출신입니다. 구글의 플렛폼은 빅브라더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지만 협업의 이상을 지금도 혁신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조선일보의 자회사가 1년에 걸쳐서 실험하는데 왜 한국의 진보라는 분들은 못하십니까? 그러면 진보의 깃발 내리셔야 합니다. 제가 진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건 우리가 보수보다 더 혁신적이고 더 삶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노회찬 대표가 진보정의당에 핸드폰 30개를 나눠주고 실험한다고 하실 때 ‘역시 노선배다.’ 라고 외쳤습니다. 이런 것이 진보의 자세입니다.

교육 훈련의 부분에서도 민주당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에 대해서 처절히 생각해야 합니다. 10년 전 박노예 시인이 자본은 초단위로 숨 가쁘게 혁신을 하는데, 우리는 자본보다 더 혁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신 그 말씀이 저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Q. 제가 요즘 SNS를 많이 하는데 지금 구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준석, 한정석 등과 같은 보수 인물들인데 그 분들의 글을 볼 때 마다 많은 고민들을 하게 됩니다. 저는 운동권 아버지로부터 이식되어 좌파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데 그 분들의 춈스키 같은 사람들을 비판하고 시장찬양 글을 보면 고개를 끄덕일 때가 있고 그래서 왜 내가 이 글에 반박을 못하는지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강의에서 인물을 키워야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앞으로 10년을 바라본다면 제대로 된 좌파적 싱크탱크를 구축해야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제 나이 또래(20대)에서 정치에 대한 논쟁을 할 사람들이 없습니다. 지금 새누리당에서는 이준석을 내세우며 청년 우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버드 출신, 그것은 빈껍데기일 뿐이고 벤처사업도 이룬 것도 하나 없지만 그것이 먹히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은 청년우파모임과 같은 그룹을 통해 체계적으로 청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저는 누구랑 토론하고 누구랑 공부해야하는 답답합니다. 여기 지식인 분들이 계신다고 한다면 청년들을 키우는 노력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민주당 총선 패배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FTA사건때에도 본질을 보려면 독소조항을 먼저 꺼냈어야 하는데 공론화 시킨 것이 광우병이었습니다. 광우병보다 더 위험한 요소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해를 낳을 수 있는 광우병 공론화를 통해서 패배를 좌초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A. 책임을 가지고 앞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Q. 저는 좀 전에 발언했던 분의 바로 이전세대에 속하는데요. 운동권 다음에 미국 민주당의 방식은 소비적인 방식, 정치를 사고 파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그런 느낌이 강한데, 그렇게 해서 가치와 의미를 생산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고요. 특히 저희 세대가 느끼는 것은 갈 길을 잃은 막막함, 현실 시장에서 취업도 어렵고 가치를 추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러한 소비적 방식의 정치가 유효한 것인지 어떠한 가치를 생산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A. 저도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클린턴시대가 가진 한계, 정치를 마케팅화한 측면에서는 그 지적에 동감합니다. 동시에 정치가 가지는 기본적인 전제는 시민들과 소통하고 공감해야한다는 것을 그들은 여론조사나 다양한 기법 등을 통해서 접근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에게 일정정도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의 정치는 상대에 대해서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취약합니다. 안철수 교수가 청춘콘서트를 하면서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도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하고, 자신의 아젠다로 만들려고 했던 노력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 점에서 클린턴 시대를 특징짓는 한마디, ‘나는 당신의 고통에 공감합니다.(I feel your pain)’ 이라는 것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과 소통하려고 했던 본질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특징인데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와 이념 속에서 시민을 바라보려는 것이 여전히 우리 정치에서 강한 것 아닌가, 이러한 관성을 없애는 점에 있어서는 일정의 긍정성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