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밧사 회원이 운영하는 ‘담담(潭談)’은 “백 번은 들어봤어도, 한 번도 안 읽은 사회복지 고전을 읽어보자”는 학습 활동입니다. 그동안 읽었던 책은 『베버리지 보고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복지국가의 철학』, 『올리버 트위스트』, 『선물관계』, 『인구위기』,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였습니다.
2월 22일에는 8번째로 현대 사회정책과 인권 분야에서 시민권 의제가 발전하는 데에 공로가 큰 마셜의 생애와 이론을 정리한 『토머스 험프리 마셜』을 함께 읽었습니다. 파주 출판도시 사회복지책마을에 아침 9시부터 모이기 시작한 참여자들은 오전에는 책의 열쇳말인 ‘권리’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권리에 대한 참여자들의 생각은 자기주체성, 누구나존엄, 기회균등, 자유, 권리의 다양성, 연대담론, 개별고유성, 개인공동체, 복지과정, 복지가치지향성, 국가책무성들로 범주화되었습니다.
점심과 출판도시 산책 뒤 오후 시간에는 저자인 김윤태 교수님과 강독회를 가졌습니다. 아래는 김 교수님의 강연 요지입니다.
복합연결사회 ‘중간 거리 내부의 사회학적 징검다리(sociological stepping stone within the middle distance)’ 전략 개념으로 사회문제에 접근한 마셜은, 17세기~18세기 영국 미국 프랑스 혁명의 산물인 공민권과 정치권에서 노동자와 여성과 흑인들이 배제되는 불평등에 주목하면서 평등의 시민권을 역설하였다. 마셜의 견해는 자본주의 경제, 민주적 정치, 사회복지 제도의 모순적 질서의 조합을 인정하는 다원주의 사회 또는 복합연결사회(hyphenated society)를 지향한다. 마셜은 20세기에 시민권과 자본주의 사이에 커다란 갈등이 빚어졌다고 보았다.
시민권과 자본주의 시민권은 자본주의의 변화를 강제한다. 20세기의 역사는 오랫동안 이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독일의 사회보험, 스웨덴의 복지제도, 미국의 사회보장법, 영국의 국민보험법은 하층 계급이 보편적 시민권을 실현해 온 투쟁의 결과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에게 현금을 지원하는 공공부조 대신 보편적 사회 보험을 도입한 스웨덴이 불평등 수준이 가장 낮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평등과 불평등 마셜은 평등과 불평등 중 한 가지 원리가 사회를 지배한다고 보지 않았다. 마셜은 두 가지 원리가 타협하며 공존한다고 보았다. 자본주의 경제가 만든 계급 불평등과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평등주의 경향은 지속적으로 충돌하면서 균형을 유지한다. 서유럽 정치에서 평등주의 운동은 사회주의 운동 외에도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사회적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등 다양한 경향으로 나타났다. 소련, 중국, 베트남, 북한의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와 사유재산제를 철폐했지만, 정치 엘리트의 권력 독점과 정치적 불평등은 매우 심화되었다.
두 종류의 사회주의 마셜은 넓은 의미의 사회주의를 지지했지만, 두 가지 종류의 사회주의로 구분했다. 첫째, ‘진정한 사회주의’는 폭력적이든 평화적이든지 자본주의를 폐지하여 사회경제적 체제를 바꾸려는 이데올로기를 포함한다. 이러한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가 대표적이다. 또 다른 종류의 사회주의는 ‘온건한 사회주의’이다. 마셜의 주장은 ‘강경한’ 또는 ‘최대강령주의’(maximalist)의 시민권이 아니라 ‘온건한’ 또는 ‘최소강령주의’(minimalist)의 시민권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의 견해는 자유시장을 인정하는 동시에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20세기 초반 영국의 ‘새로운 자유주의’(new liberalism) 또는 ‘사회적 자유주의’의 전통과 가깝다. 이는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와 유사하다.
불평등 사회의 시민권 – 마셜은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벌어진, 평등을 추구한 사회 혁명이 이룬 위대한 역사적 결과를 강조했다. – 훗날 포스트모더니즘과 윤리적 상대주의에서 제시될 주장, 즉 ‘인류 진보’라는 개념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 물론 진보를 측정하는 기준은 계속 변화하고, 불평등과 차별이 만연한 세상은 아직도 여전하다. – 마셜은 경제 성장의 시대가 지속되는 가운데 과거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하류층이 발견된다고 지적한다. 절대적 빈곤층은 사라졌지만, 상대적 빈곤층은 아직도 상당수 존재한다.
시민권의 한계 첫째, 마셜은 영국 국민을 하나의 동질적 집단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영국의 시민권의 발전과정에서 국민적 동일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Turner, 1986: 75). 둘째, 마셜의 시민권 이론은 국제 체계의 영향에 대한 제한적 설명만 제공한다. 급속한 지구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전통적 국민국가 체제는 극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겪었다(Sassen, 2002). 셋째, 마셜은 시민권을 국민국가의 체계에서 통합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모든 나라에서 시민권이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시민권의 교훈 21세기 오늘날에도 T. H. 마셜의 시민권 이론은 경제 자유화, 공기업의 사유화, 탈규제, 복지 축소 등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비판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 마셜은 개인을 국가 또는 시장의 틀에 갇힌 이기심의 화신으로 보지 않았다. 사회적 개인은 호혜성의 원칙에 기반한 공정한 체계라는 생각을 공유한다. – 자유시장 지상주의 이데올로기는 마셜의 보편적 시민권과 지속적인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 마셜의 시민권은 단편적 해석이나 화석화된 고정관념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에서 변화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 불평등이 빠르게 증가하는 현 시대에 마셜의 고전적 저작은 사회권의 발전에 관심을 가지는 많은 사람의 지적 분발과 적극적 행동을 촉구할 것이다.